그땐 그랬는데.

'나 때는 말이야'

by 갑자기 흰수염

허송세월 나이를 먹으며 느끼는 아픔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음입니다.


한 직장을 7년 이상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내 집을 마련하는 이들이

오래전 젊음을 함께 낭비했던 친구를 만나 하는 이야기는 지금의 자신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묘한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왔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대한 '지금'입니다.

넌지시

"회사 연봉은 이래(이렇게 적은데 나름 괜찮지?)"

"대출을 받으려니 회사 덕분에 이 만큼 더 받을 수 있네. 다행이야(자랑은 아니야)"

"나 때는 아닌데 지금 들어오는 후배 관리가 어렵네(나도 그런 시기를 겪었는데 그 아이만큼은 아니야)"


듣다 보면 이상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했던 실수를 웃고 떠들었던 우리는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됐던 그녀

대학교 때 동기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됐던 사건의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실수는 친구에게 밝힐 수 없는 치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했던 실수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서른아홉에는 실수를 말하기보다 해낸 것들을 말해야 하는가 봅니다.


그들이 해왔던 일들은 오롯이 지금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넌지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몰고 다니는 차, 여행의 장소, 거주 지역을 보면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은 말하는 친구들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립습니다.

응원하고 자랑하는 친구의 삶이 아니라 그들의 바보 같은 모습이 그립습니다.

해왔던 삶도, 바보 같은 모습도 모두 제가 알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짧게 만나는 친구들의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당연히 그럼 안되지"라는 말들이 모두의 동의 속에 메아리칩니다.


왜,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만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요.

사회생활을 한다는 우리가

했어야 하는 의무, 기준, 원칙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요.

"당연히 그럼 안되지"라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꺼낸 말들이 아니었을 텐데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나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꼰대는 아니야'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들은 알까요?

정답만을 뻐꾸기처럼 말하는 우리가 이미 '나 때는'이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 슬픈 건지, 어느덧 숨겨야 하는 나이라서 슬픈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작고 거대한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인간에게 말하지 못하는 거리가 벌어짐에 아쉽습니다.

나이가 들면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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