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백수가되기로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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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자기 흰수염


빛나는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다. 우연한 찰나 서로를 향한 불꽃이 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듯, 안 한 듯한 화장에서 보이는 것도 아니다. 조각 같은 비주얼과 여신 강림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언제나 기계적 웃음을 보이는 정치인의 얼굴에서도 볼 수 있지 않다.

보통 한 사람이 무언가에 열중할 때 발견하게 된다.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에서, 주변 소리가 묵음이 된 듯 자기 일에 열중하는 누군가는 얼굴이 빛난다. 빛나는 핵심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다.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빛나지 않는다. 그래서 매우 드물게 마주하게 된다. 우연히 들른 커피숍에서, 어쩌다 들른 꽃집에서 종종 그런 얼굴을 본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에서도 쉽게 볼 수 없고 허름하지만 인심 넉넉한 가게에서 간혹 만난다. 그럴 때면 괜한 반가움이 생긴다. 나도 몰래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누군가가 꿈을 꾸는 모습을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은 이토록 벅차다.


여기 회사에서는 딱 한번 봤다. 한 명이다. 그전까지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내 얼굴에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습관처럼 일하고, 구력으로 업무를 처리하거나 워라벨만 챙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빛나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런 사람을 보았다. 발견하고 나서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도 함께 왔다. 바로 대표였다.

유독 멍한 기운이 아침을 지배하는 금요일,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사물을 보다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처럼 우연히 열린 대표실 문을 통해 아침 8시 20분부터 실무진과 회의를 하는 대표의 얼굴을 멍하게 쳐다봤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회사에서 찾을 수 없었던 빛나는 얼굴을 대표가 하고 있었다.

'뭐,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 회사인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게 이거니까 회사를 경영하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9시도 안됐는데 업무를 시작해버렸다.


억대 연봉에 가까운 회사 중책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얼굴을 찾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던 중 A에 대한 대표의 믿음이 와장창 깨진 날이 있었다. 믿음이 깨진 건 회사 입장에서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닐 수도 있지만 A가 벌려놓은 사업의 위험성은 아무것도 모르고 퇴근한 회사 직원 전체와 연결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표는 이른 저녁부터 술을 마셨다. 뭣도 모르고 불려 간 나였지만 분위기와 툭툭 내뱉는 대표의 말로 충분히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대표가 마시면 나도 마셨다. 회사 지분도 없고 나 하나 없어도 잘 굴러가는 회사지만 왠지 그날 밤은 회사와 일심동체라도 된 듯 속상함이 몸 한구석에서 청승맞게 계속 흘러나왔다. 주거니 받거니도 아니고 자작에 자작을 이어가다 보니 갈 사람은 다 갔다. 청승맞게 나는 못 갔다. 젊은 대표는 술집에서 집까지 걸어서 40분 거리를 걷자고 했다. 차마 집에 간다고 말도 못 하고 터벅터벅 걸었다.

"내가 병신이야. 내가 병신 짓 했어. 내가 왜 그랬을까"

대표의 자책 섞인 말을 들어버렸다. 물끄러미 대표 얼굴을 쳐다봤다. 고통과 고뇌가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감 있던 눈빛은 어두운 한강으로 가라앉았다. 같이 걷던 회사 중책이 뭐라 뭐라 말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술 먹고 들어간 새벽은 아침잠도 별로 없다. 진동하는 술냄새를 마스크에 채워 넣으며 다시 취하길 반복하다 보니 이른 출근을 했다.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대표실 문이 열려있었다. 얼굴 홍조를 들이밀며 나는 쭈뼛쭈뼛 노크를 하고 인사를 했다.

"응, 일찍 출근했네. 어제는 고생했다"

역시 홍조 가득한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내 마스크 안 술기운이 눈썹에 맺혀 그런 건지 대표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책상 서랍에 저장해둔 숙취해소제를 꺼내 먹으며 생각했다.

'대단하네, 대단해. 그렇게도 재밌습니까. 힘들어도 재밌는 겁니까'


동시에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게 알코올로 요동치는 뱃속에서 기어코 올라왔다.

나에게도 힘들어도 기를 쓰고 했던 일이 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했던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행복해서,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 있었을 것 같다. 분명히 오래전 기억이 아닌 것 같은데 뱃속 알코올이 녹여버린 것인지 아려오는 따끔함만 느껴졌다.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자랑이라고 홍조가 보였다. 푸석푸석한 피부도 보였다. 켜지 않은 모니터 속 껌껌한 눈동자가 나를 지켜봤다. 보기 싫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버렸다. 한결같은 로딩 화면이 떠올랐다. 흐린 눈동자를 감추는 한결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마음먹은 백수의 길이 저만치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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