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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다. 창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사무실이 후끈해진다. 아직 에어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어김없이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간다. 따라 나온 옆 팀 차장이 언제나 그랬듯 회사 불만을 토해낸다. 다른 팀 대리도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다. 조금만 지나면 회사 욕을 한다. 괜찮다. 회사원이 회사 욕이라도 안 하면 어떻게 버티랴.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려주면 풍성하고 다양한 욕을 들을 수 있다. 그들 입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회사 욕이니 옥상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어진다. 매번 주제가 바뀌는 것이 처음엔 신기했으나 이제는 익숙하다. 회사도 살아있는 생물이라던데 매일 변화하는 회사가 회사원에게는 좋은 '꺼리'를 제공한다. 변하지 않는 욕의 분야도 있고 매번 신선한 분야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그들 위로 흐르는 구름은 평온하기만 하다.
‘불만 가득한 이들의 평화를 지키고 싶다’
모니터 앞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하는 와중에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나도 당황스럽다. 일개 과장 나부랭이가 뭔 오지랖인지 모를 노릇이다. 부서 특성상 회사의 사업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떤 사업이 어디서 빵구가 나는지, 누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알 수 있는 부서다. 중소기업은 작은 바람에도 위태롭게 흔들린다. 경영자의 실수 하나는 회사의 존폐를 결정한다. 살얼음판은 경영자가 걷는다. 잠은 경영자가 못 잔다. 나는 주중에는 퇴근하는 순간 회사원이기를 거부한다. 소중한 나의 주말을 건들라치면 있지도 않은 ‘결혼식 참석’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다. 그런 나도 순간순간 휘청거리는 회사를 볼 수는 있다.
회사 입장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풀지 못하면 망하고 답을 찾으면 살아남는다. 이 회사는 매일 그런 시간의 반복이다. 내 윗급부터 경영진은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입에 단내가 나게 토론을 하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막중한 임무를 주고 초조하게 기다리기도 하고 보고 받으며 좌절하기도 한다. 한숨이 회의실에 쌓이면 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다시 돌아와 같은 사안을 놓고 또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 하루가 쌓여도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한걸음 앞으로 갔다'는 위로는 사업에 큰 위로가 아니다. 피 말리는 관련자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사업은 도장을 찍을 때까지, 공장이 굴러가고 생산물이 나올 때까지, 고객에게 물건이 도달할 때까지, 회사 통장에 돈이 들어올 때까지 완료됐다고 말할 수 없다. 불확실성안에서 피 말리는 경영자와 경영진이 있을 뿐이다. ‘다 됐다. 오늘은 푹 쉬자’라고 말할라치면 일은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터진다.
회사의 위태로움과 회사를 향한 직원들의 불만이 겹쳐 보인다. 무엇하나 소홀이 다룰 수 없는 대상이다. 절름발이처럼 걸으면서도 뛸 수 있다는 회사도, 회사 욕이라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직원의 생기도 모두 소중하다. 출렁거리는 회사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모니터에 집중하는 직원들의 뒤통수가 보인다.
‘욕이라도 하며 버텨내는 이들의 하루가 이 회사에서 오래갔으면 좋겠네’
괜한 오지랖이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