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지금
안녕하세요? 편지를 부치고 싶은 밤이에요.
오늘 저는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보고 왔어요.
주인공들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듯 영화의 흐름도 그렇게 전개됩니다. 개연성이 있는 건가 싶은 타이밍이 몇 번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모순되게도 죽음을 다루는 영화인데 저는 두 인물의 모습에서 생명력을 느꼈어요. 제가 전에 소개해 드렸던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가 생각나기도 하면서, 두근거림으로 다가왔네요. 죽음을 앞두고 기쁨과 슬픔, 혼란스러움과 후련함, 불안함과 충만함 같은 상반된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두 인물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저도 그런 삶을, 그런 우정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GV도 있었는데, 저는 아직 영화 평론과는 친해지지 못했나 봐요. 감독이 어디에서 레퍼런스를 얻었을 것이고 영화의 풍은 어느 갈래에서 왔는지는 흥미롭게 들리지 않더라고요. 제가 그런 말을 재밌게 들을 수 있는 수준이 안될지도요. 저는 그보다 관객 각자가 느낀 영화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얼마 전 취업 상담사님이 해준 말도 생각나네요. 제 자기소개서를 보시더니, 스스로 의도를 세우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임이 티가 난다. 이때까지 일해온 스타트업에서는 좋게 작용했을지 몰라도, 대기업 쪽에서는 시스템에 맞게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한데 너무 자아가 센 사람을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뜬금없지만 제가 어떻게 느끼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 중요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하지만 ‘감독의 의도 따위 댕댕이나 줘버려!’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걸요.
아, 딴 길로 샜군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요즘의 일상이 제게는 충분하다는 것이었어요. 근 몇 달간 욕구와 욕망을 구별하고, 어디서 기인했는지 찾고, 길을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써왔어요.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는데, 문득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지금도 충분하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말이죠. 어차피 완벽한 정답을 찾을 수도 없고, 평생 고민의 정량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죠? 물론 고민 끝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안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지금’에 좀 더 의식의 초점을 맞춰본다는 의미에 더 가깝겠습니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월 초에 했던 새로운 다짐, 응원, 약속과 또 몇 주에 걸쳐 생긴 후회, 아쉬움, 씁쓸함이 동시에 남네요. 그렇지만 여전히 저의 조그만 일상에 대해 조잘거리고 싶어 져요. 수신인이 되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만 줄일게요. 충분한 밤 되시기를.
주나 드림.
https://www.youtube.com/watch?v=MR-We_a4v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