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마지막에는 독특한 비유 하나가 나온다.
바로 오리와 독수리 이야기다.
둘 다 같은 ‘새’이지만,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고, 조용히 비상한다.
반면, 오리는 하루 종일 물가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꽥꽥댄다.
배가 고파도, 기분이 나빠도, 먹이를 뺏겨도 늘 꽥꽥거린다.
성과는 없고, 불평만 가득한 삶.
생각해보면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도 이와 닮아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독수리처럼 높이 날며 시야를 넓힌다.
문제를 위에서 바라보고, 본질을 꿰뚫으려 한다.
반대로, 실패하는 사람은 오리처럼 하루 종일 불만을 이야기한다.
현실에만 파묻혀 ‘왜 안 되는지’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결국, 어떤 자세로 삶을 마주하느냐의 차이이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마주하는 사람은 문제 속에서 해답을 찾고,
부정적으로 마주하는 사람은 문제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이건 왜 안 됩니까?”라고 묻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라고 묻는다.
나도 조직 안에서 일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
‘안 된다’는 말보다 ‘이 부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풀어보려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성장 확연하다.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불가능을 이야기하기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사람은 결국 더 멀리 나아간다.
삶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
그 순간만 보면 너무도 절망적이지만, 결국 시간은 흐른다.
그때 어떤 자세로 그 순간을 견뎌냈느냐에 따라
삶은 매끄럽게 흘러가기도, 복잡하게 얽히기도 한다.
우리 모두 늘 독수리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오리처럼 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바뀐다.
자신의 시야를 점검하고, 지금 나는 꽥꽥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조금 더 슬기롭게 삶을 헤쳐나가는 시작이 아닐까.
오리는 말한다.
“난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어.”
독수리는 묻는다.
“어떻게 하면 감당할 여력을 만들 수 있을까?”
오리는 비관론자, 독수리는 낙관론자다.
오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나누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독수리는 긍정적인 일에 집중하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오리는 꼭 필요한 일만하며 때로는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다.
독수리는 기대 이상을 해내고 자신이 가야 할 거리보다 더 멀리 간다.
오리는 천천히 일한다.
“나는 일하는 중이야. 도망치는 게 아니야.”
독수리는 최대한 빨리, 집중해서 처리한다.
하늘을 날고 싶은가?
아니면 꽥꽥대며 물가를 맴돌고 싶은가?
선택은 언제나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