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칠월칠석의 견우와 직녀
차라리 잠에 들어 꿈에서나 님을 보려고 하니
바람에 지는 잎과 풀 속에 우는 저 벌레는
무슨 일로 나와 원수가 되어 잠조차 깨우는가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칠월 칠석 일 년에 한 번은 때를 어기지 않고 만나는데
우리 님은 가신 후에 무슨 약수에 막혔길래
오는지 가는지 소식조차 끊겼구나.
* 약수 :길이가 삼천리나 되고 물에 들어가면 가벼운 기러기 털도 가라앉아 사람들은 절대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많이 인용된다.
이 시는 조선시대 여류 시인이었던 허난설헌이 쓴 <규원가> 중의 일부이다. 허난설헌은 어려서부터 서예, 그림, 글에서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두 자녀의 죽음과 유산 등 많은 불행을 겪었다. 이 시는 기생집에 드나들며 자신을 찾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담고 있으면서도 남편을 기다리는 그리움을 절절히 담고 있다. 허난설헌은 이 시에서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만나는데 자신과 남편은 그렇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그는 27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는데 남동생 허균에 의해 중국에서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으며, 일본에도 그 시집이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의 삶은 불행했으나 그 불행이 시로 승화되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하겠다.
허난설헌은 시에서 견우와 직녀를 부러워하였으나 견우와 직녀가 이 시를 읽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견우와 직녀는 허난설헌을 자신들보다 더 가엾게 생각했을까? 그러기엔 견우와 직녀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 견우과 직녀는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하늘나라에서 소를 키우는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이자 베를 짜는 일을 하고 있던 직녀는 일에만 빠져있는 워커홀릭이었다. 옥황상제는 이 둘을 불쌍히 여겨 직접 부부로 맺어주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가 결혼을 한 후에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 옥황상제는 이 둘을 은하수 양쪽으로 떼어 놓았다. 그리고 일 년에 하루 7월 7일에만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일 년에 하루 만나는 그들은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하염없이 울었는데 그 눈물이 비로 땅에 내려 홍수가 날 정도였다. 그래서 까마귀와 까치가 자신의 몸으로 다리를 놓아주어 만나게 하였다는 전설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타난 견우와 직녀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4년에 만들어진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에는 만들어진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어떤 한 사람이 고구려 천문도 비석의 탁본을 바쳤는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은 하늘의 뜻이며, 그 하늘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사라졌던 고구려의 천문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가 하늘을 뜻을 알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는 천문도였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도 견우와 직녀의 별이 보인다. 가운데 보이는 하늘색의 물줄기처럼 보이는 것이 은하수이다. 은하수의 양쪽으로 직녀와 견우가 있다. 재밌는 것 하나는 견우별을 은하수 바깥쪽에 있는 별이 아닌 은하수 속에 있는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로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견우별인 염소자리 다비흐는 밝기가 낮아 잘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반해 칠석 무렵인 여름철과 가을철에 가장 잘 보이는 별이 3개가 있어 여름철 대삼각형이라 하는데 직녀별인 거문고자리 베가와 함께 백조자리 데네브,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녀와 견우의 사랑이야기를 안타까워하며 항상 서로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철에 항상 밝게 빛나는 두 별에 직녀와 견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래서 밝은 별인 알타이르가 견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견우가 둘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염소자리의 다비흐도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도 모두 견우다.
고구려 무덤인 덕흥리 고분의 무덤벽화에는 견우와 직녀가 그려져 있다.
은하수 한편에는 직녀가 두 손을 모으고 떠나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칠석의 짧은 만남 후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길인가 보다. 견우는 소를 끌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소의 발 모양으로 보아 견우는 무척 빨리 걷고 있는 것 같다. 견우는 돌아보고 싶지만 직녀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가 마음 아파서, 그리고 자신의 슬픈 모습을 직녀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급하게 떠나가고 있는 것 같다.
애틋한 사랑이 연인 사이에만 있으랴!
칠석의 풍습 중에 맑은 물을 떠놓고 밤하늘의 북두칠성에게 자손들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풍습이 있다. 칠석과 칠성의 발음이 비슷하여 서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 날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는 북두칠성에게 소원을 비는 풍습이 생긴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어떤 날에도 변함이 없으니 부모의 마음은 일 년 365일 모두 칠석일 것이다.
한편 1970년대 중반에 문병란 시인이 쓴 <직녀에게>는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은 서정시다. 꼭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이 만나야 한다는 시인의 감정이 절절히 표현되어 있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가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중략----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올해 칠석은 8월 14일이다. 연인들이 더욱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자식들이 부모님의 사랑에 행복했으면 좋겠고, 요즘 좋지 않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이 넘치는 칠석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21년 8월 12일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6368)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