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북지방 기준인 절기와 일본의 표준시를 따르는 시간에 대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에서 주인공인 홍길동은 양반 집안에 서자로 태어난다. 어릴 때부터 학문으로도, 무예로도 무척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집을 나온 홍길동은 도술을 익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사람들을 이끌고 조선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홍길동이 세운 나라는 신분의 차별이 없는 이상적인 나라였다.
2021년 8월 7일은 어떤 날일까?
입추이다. 입추의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폭염은 계속되고 있어 여름의 한가운데라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가을이라고 느끼는 기온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정도이며, 이러한 기온이 되는 시작되는 시기는 입추로부터 45일이나 지나서야 오는 절기인 추분이 되어야 한다. 추분은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입춘 즉 봄의 시작되는 날도 마찬가지이다. 2021년 입춘은 2월 3일이다. 2월 3일의 서울의 날씨를 보면 영하 8도~영상 2도였으며 눈이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봄이 아니라 겨울이 한창일 때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 년을 24개로 나눈 24절기는 왜 실제 날씨와 맞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절기가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의 화북지방(북경이 포함되어 있는)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의 대한민국은 왜 여전히 중국을 기준으로 한 절기를 사용하는 것일까?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여름을 여름이라 부르지 못하고 폭염의 한가운데에서 가을이 시작된다라고 이야기하고, 겨울을 겨울이라 부르지 못하고 영하의 기온과 눈이 내리는 날씨를 봄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시간도 마찬가지다. 세종 16년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다는 해시계 앙부일구를 보자. 세종은 앙부일구를 궁궐뿐 아니라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였으며,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앙부일구에 12지신 그림을 그려 백성들도 시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앙부일구로 시간을 측정해보면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의 시간은 약 30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즉 해의 위치는 12시인데 시계의 시간은 12시 30분인 것이다. 이 이유는 우리나라가 우리나라의 표준시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의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1954년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표준시를 사용하였으나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1961년에 일본에 주둔한 미군의 합동 군사 훈련 및 전쟁 시 작전 수행의 편리를 위해 우리나라의 시간을 일본 표준시로 맞추었기 때문이다. 즉 2021년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시간이 아니라 일본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농경사회의 전통인 24절기는 사용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24절기마다 기상청 예보에서는 24절기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기상청에서는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기후에 맞는 절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매일 사용하는 시간을 일본의 수도 도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을 기준으로 바꾸면 안 될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학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문화적 역량이 있는 강국이다.
난 조선시대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홍길동도 아니니 여름을 여름이라 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앙부일구를 가르치며 30분을 더해 일본시간을 만들어야 시간이 맞다는 그런 설명을 하고 싶지 않다.
올해는 광복 76주년이다. ‘대한독립만세!’가 아닌 ‘시간독립만세’를 외치고 싶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21년 8월 4일자(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4048&PAGE_CD=N0002&CMPT_CD=M0117)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