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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Nov 22. 2020

이유 없는 구멍은 없다

빗살무늬토기의 비밀


빗살무늬토기의 구멍을 본 일이 있나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본 적이 있는 아래 사진, 이 사진은 바로 암사동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빗살무늬토기 사진이다. 여러분들은 이 빗살무늬토기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빗살무늬토기의 무늬의 의미나 아랫부분이 뾰족한 이유도 아니다. 바로 사진에서 살펴볼 수 있는 구멍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멍을 처음 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 저렇게 구멍이 뚫려 있었냐고? 하지만 저 구멍은 신석기시대부터 뚫려 있었던 것이다. 난 저쪽 면이 아니라 반대쪽 면만 봐서 저 구멍을 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암사동에서 발견된 이 빗살무늬토기에는 반대쪽에도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분명히 일부러 뚫은 것이다. 이 구멍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암사동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에만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에도 이러한 구멍들이 많이 보인다.

암사동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국립중앙박물관
연천 삼거리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경기도박물관
빗살무늬토기에만 구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장군이라 불리는 액체를 담는 그릇에도 구멍이 있고, 한가운데 구멍이 있어  사용이 안될 것 같은 투박한 구멍도 있다.

토기 장군

특별한 토기에만 구멍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아래 사진을 보라. 그리고 그 아래 상상 이상 크기의 구멍이 있는 토기도 한번 보길 바란다.

국립부여박물관

그리고 이런 멋진 모양의 토기에도 구멍이 뚫려있다.


구멍이 뚫린 토기를 처음 본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관심을 두지 않아서이다. 관심을 두고 보면 어느 박물관에 가던지 아주 흔하게 토기에 난 구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은 왜 이리 토기에다 구멍을 내놓은 것일까?

토기의 구멍마다 그 이유는 다 다르다.

우선 토기 장군의 경우는 부장품(무덤에 같이 묻는 물건)일 가능성이 크다. 부장품은 도둑들이 다시 꺼내서 쓸 수 없도록 한쪽 끝을 깨거나 구멍을 뚫어 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쪽 끝을 깨뜨려 넣은 도자기

국립부여박물관 '구멍이 있는 토기들'의 구멍은 대나무나 나무 대롱을 꽂아 주자(주전자)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그 구멍에 맞는 나무를 끼우면 액체를 따르기 편리한 주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나무는 썩어 없어지고 이렇게 구멍만 남아 있는 것이다. 사용되었을 때를 관람객들이 알 수 있도록 한 두 개의 항아리에는 대나무를 끼워놓아 전시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빗살무늬토기로 가서 '왜?'라고 질문해보자


문화유산에 대해 탐구하는 방법 중 가장 쉬우면서도 최고의 방법은 '왜?'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을 들어보고, 그 답변에 대한 적절성을 함께 판단해보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장 많은 답변은 물이 쉽게 빠지도록 하기 위해 구멍을 뚫었다는 것이다. 그 답변에 대해 다시 이 토기의 쓰임새를 이야기 나누며 적절성을 판단한다.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아 담아두기 위한 용도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빗살무늬토기는 조리용으로도 사용되었는데, 구멍이 있으면 물이 다 새지 않았을까?"

"벽에 걸어놓기 위한 줄을 달았던 구멍이 아닐까요?"

"그것도 그럴 듯한데 그런 구멍이라면 위쪽에 구멍이 있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요즘은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보면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정통한 학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하고 답변에 대해 사고력을 유발하는 질문을 던져준다면 아이들은 이 빗살무늬토기의 구멍 하나만으로도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 2시간을 이 이야기만 해도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고, 급기야 과제로 내어준다. 네이버를 믿고 자신만만해했지만, 네이버도 어른들도 그 답변을 쉽게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네이버로 해결이 안 되니 부모님께 물어보고, 곤란해진 부모님들이 몰래 전화를 하셔서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그 정통하다는 '학설'에 반대되는 의견 역시 아직 많으니 말이다.


그럼 답을 알아보자.

그 정통하다는 학설은 '토기의 수리 흔적'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땅을 파고 불을 피워 흙으로 만든 그릇을 넣어 구웠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굽는 과정에서 깨져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깨지지 않고 구워져서 단단해진 그릇은 그래서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용 과정에서 깨어지더라고 버리지 않고 깨어진 양쪽에 구멍을 뚫어 칡넝쿨 등을 이용하여 묶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것에 대한 증거로 구멍에는 칡덩굴의 흔적이 남아있고, 구멍과 구멍 사이에는 반드시 깨진 자국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반대 의견은 빗살무늬토기의 단단하기가 약해서 깨진 조각에 구멍을 뚫어서 묶는다는 것이 그때 기술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확한 답은 없을 뿐더러 중요하지도 않다. 단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멍이 있든지 없든지 지금 현재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시대의 어려웠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탐구해봄으로써 나에게 다가올 문제들에 대한 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깨알 지식 하나!

빗살무늬토기로 주로 해 먹은 음식과 조리방법은?


1. 빗살무늬토기로 해 먹은 대표음식은 조개탕이나 생선탕일 것이다. 신석기인들은 해안가나 강가에 살았다. 물고기나 조개를 잡아 빗살무늬토기에 넣고 보글보글 끓여 맛있게 먹었다. 두 번째로 도토리 죽이다. 물에 오랫동안 담가서 쓴 맛을 없앤 도토리를 갈판과 갈돌을 이용하여 가루로 간다. 그리고 토기 안에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아마 수확한 곡식류의 가루도 함께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식혀서 오물조물 주물 딱거리면 떡과 같은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맛있게 냠냠냠~

움집 안에서 빗살무늬토기로 조리를 하는 모습/우리 역사넷

2. 조리방법은? 조리 방법은 쉬운 게 아니냐고? 그냥 불을 피우고 토기를 냄비처럼 사용하지 않았냐고?  위의 우리 역사넷에서 가져온 사진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면 질문도 하지 않았겠지. 물론 그렇게도 조리를 했다. 발견된 토기 바깥에 불에 그을린 자국들이 발견이 되니까. 하지만, 실제 고고학자들이 그렇게 조리를 해보니 음식들이 토기에 들러붙어서 타는 경우가 많더란다. 그래서 추측한 방법 하나. 불을 피워 그 속에 매끈한 강돌을 집어넣어둔다. 그 후 뜨거워진 돌을 재료와 물이 담긴 토기 안에 넣는다. 그럼 강돌에 재료가 붙으면서 익혀진다. 표면이 매끈한 강돌은 음식이 잘 떨어지니 소중한 음식재료가 낭비되지 않고 조리할 수가 있다. 그럼 맛있게 냠냠냠~


아.. 참고로 저 위의 그림은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신석기인들은 움집 안에서 조리를 하지 않았다. 움집 안의 화덕은 난방용이었다. 조리용 화덕은 움집 바깥, 마을 가운데 있어 공동 조리를 하였다.


빗살무늬토기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

  빗살무늬토기에서 민무늬토기로의 변화는 혁신이었다. 이 혁신은 19세기 세계유산 화성을 쌓은 기술로, 오늘날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로 발전한다. 이 혁신은 무엇일까?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세계유산 화성 성벽
현대과학기술의 결정판 자동차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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