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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Dec 05. 2020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보신각종?

에밀레종의 비밀

'슬픈 에밀레종'은 2003년 정호승 시인이 쓴 동화책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일본인 순사 야마모도가 마을 사람들을 시켜 에밀레종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반대하지만, 야마모도의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면서 강요합니다. 하지만, 신비한 힘에 의해 결국 그 계획은 실패로 끝납니다.  정호승 시인은 책의 서문에서 "에밀레종의 전설을 모르는 어린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를 좀 더 행복한 이야기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했다. "라고 했습니다.  동화책의 끝에 보면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몇 날 며칠을 기도를 하다가 쓰러지자 부처님이 그들의 정성에 감동하여 아이의 베개를 넣게 하여 종을 완성시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와 같은 이야기 전개는 사람의 마음을 은은하게 사로잡습니다.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었던 영희와 에밀레종의 영혼인 봉덕이의 대화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학급문고로 사놓고 반 아이들에게 읽히기도 하였습니다.


에밀레종을 바라보는 시선

여기서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정호승 시인이 말했던 "에밀레종의 전설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입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대부분 에밀레종의 전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3-4년 전 초등교사, 중등교사가 모여 어린이를 위한 문화유산에 대한 글을 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 역시 에밀레종의 전설을 다 알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 그 글은 삼국유사에 실려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삼국유사를 읽었을 때 그 이야기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수학여행에서의 한 장면입니다. 우리나라 초, 중,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가는 곳은 경주이며, 경주에 가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 경주국립박물관입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가면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성덕대왕신종입니다. 이 성덕대왕신종 앞에서 문화유산을 해설하시는 해설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린아이를 넣어 종을 완성함으로써 종소리가 엄마를 부르는 것 같다는 다소 애절하기까지 한 이야기는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와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자비를 기본으로 하는 불교와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구원한다는 범종의 특성을 보았을 때 어린아이를 공양하였다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성덕대왕신종을 분석해봤더니 사람을 공양하였다면 나와야 할 '인'이 없기 때문에 인신공양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과연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일까?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래전부터 설화나 역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첫 번째, 중국의 범종 이야기입니다.  

중국 감숙성 대운사라는 절에 지금으로 부터 1400여 년 전 당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범종이 있습니다. 이 범종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이름난 종입니다. 그런데 이 범종에는 이런 설화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황제가 자신의 덕을 알리고 태평성세임을 상징하고자 종을 만들어 세우라고 명을 내렸다. 이 명을 받은 양주 태수는 양주가 풍족한 고을임을 과시하고자 커다란 종을 만들기로 하고 세금과 모금을 함께 거뒀다. 가뭄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온갖 수탈에 시달리기만 하였다. 가난한 주종 기술자는 아내에게 자식을 맡기고 종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였다. 아내는 먹을 것이 없어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한 시주승이 찾아와 시주를 하라고 떼를 쓰자, 화가 난 김에 ‘아이라도 가져가라!’고 내뱉는다. 결국 이 말이 화근이 되어 시주승은 아이를 데려간다. 기일이 지나도 종이 완성되지 않자 주종 기술자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태수의 불호령은 극에 달하고 시주승의 말을 들은 태수는 곧장 아이를 노(爐)에 넣어 종을 만들라고 명한다. 드디어 종이 완성되어 타종을 하는데 그 소리가 ‘엄마(娘呀)~엄마~’ 하고 울려 퍼졌다.”

에밀레종의 설화와 똑같지요?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와 교류가 많던 시절, 많은 스님들이 당나라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왔는데, 이때 대운사 종에 얽힌 전설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범종을 만드는 어려움을 나타내기 위해 대운사종의 설화가 성덕대왕신종 제작 이야기에 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도 범종 제작을 실패한 아버지를 위해 딸이 아버지를 위해 용광로로 뛰어드는 설화가 있습니다.  실제로 범종뿐 아니라 제작과정이 어려운 물건에는 대부분 인신공양 설화가 있습니다.

중국 감숙성 대운사 신종

두 번째, 성덕대왕신종에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기는 일제 강점기입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초로 나타난 에밀레종 이야기는 1925년 8월 5일 자 조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창작 문예란에 렴근수라는 사람이  <어밀네종>이라는 동화를 올린 것입니다. 즉 성덕대왕신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순한 동화처럼 씌었던 렴근수의 단편 동화 <어밀네종>이 에밀레 종 이야기가 최초로 나타난 자료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렴근수의 <어밀네종>이 성덕대왕신종을 대상으로 쓴 동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시기 조선에 선교사로 왔던 알렌이나 헐버트의 글을 보면 에밀레종은 보신각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the legend of the casting of the great bell that hangs in the centre of Seoul....(중략)....The Koreans hear in the dull thud of the wooden beam against the bell a faroff resemblance to the word 'em-mi', which means 'Mother'. Hence the legend."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은 그 이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 물품 제작을 위해 물건을 마구잡이로 거두어들이고, 군인으로 어린아이까지 징병할 때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동화를 이용하면서입니다. 친일문학가 함세득이 공출과 징병을 정당화하는 희곡 <어밀레종>을 쓰고 공연을 한 것입니다. 

아래 신문을 보면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종이며, 평양의 있는 종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1927년에 실린 실린 성덕대왕신종과 에밀레종 이야기



무엇이 진실일까?


무엇이 진실일까? 난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아닌 교육자입니다. 역사적 내용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연구자가 할 일이며, 교육자는 여러 연구자의 연구 성과를 편협되지 않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에밀레종 이야기에 얽힌 인신공양 설화는 성덕대왕신종 만의 이야기가 아닌 대부분의 큰 종에는 다 붙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서울 보신각종이나 평양에 있는 종에도 비슷한 설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덕대왕신종에 에밀레종이라는 이야기가 붙은 것은 옛 문헌이 기록이 아니라 일제가 식민사관을 퍼트리고 징발과 징용을 위한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삼국유사에 실렸있었다고 수십 년간 착각한 저 스스로를 보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이 떠올랐습니다. 베이컨은 과학적(합리적) 판단에 장애가 되는 위험요소를 4가지 꼽으며 이를 '네 개의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중 '극장의 우상'은 무대 위에 꾸며진 것을 보고 환호하는 관객들처럼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지식이나 학문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극장의 우상'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는 3-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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