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정 말이다. 밤 비행기여서 하루를 각자 알차게 보내다 다시 만나 우버택시를 타고 멕시코 공항으로 갔다. 어마어마하게 막히는 길 때문에 택시가 오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린 데다 택시를 탄 후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국제항공을 타기 위한 준비는 미리미리 가는 게 아닌가? 넉넉한 시간을 두고 출발했기 때문에 시간에 그렇게 쫓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이 2 터미널에 내려주지 않고 1 터미널에 내려주는 바람에(그것도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스름돈도 주지 않았다. 적은 돈은 아니었는데... ) 공항 대기실에 들어가서 어마어마한 공황상태를 경험해야 했다. 그때부턴 뛰다시피 움직여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2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래도 ' 이제 비행기만 타면 된다'라는 편안함은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가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11시 비행기는 뜨지 않고, 일단 내일 5시에 오라는 것이다. 그것도 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일 와바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저녁과 아침 식사권, 호텔 숙박권과 이동할 수 있는 택시 이용권을 줬다. 조금 고민이었다. 호텔로 갈지 아니면 공항에서 기다릴지. 호텔도 2군데로 따로따로이고, 호텔 또한 힘들게 왔던 곳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주변으로 호텔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편안하게 쉬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다시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향했다. 피곤함에 난 씻고 바로 잠들었다. 하지만, 여행의 젊은 피들은 한 방에 모였다. 여행기간 내내 들고 다니던 '방탈출 게임'을 개봉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2시 30분에 '방탈출'에 성공했다는 인증샷을 남겼다.
그 놀이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그 여행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교사였고, 이들은 한국에 돌아와 비대면 수업으로 아이들은 만나야 했다. 그리고 비대면 수업에서 '구글 문서를 이용해 만든 방탈출 게임'이라는 교육방법이 전국을 휩쓸며 인기 있는 교육방법으로 자리 잡아 2020년 내내 지겹도록(?) 방탈출 게임을 만들고 아이들과 비대면으로 그 놀이를 했으니, 이 또한 재밌는 일이다.
그때 수업시간에 울려 퍼지던 "마이 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13년 출시되어 8년째가 된 '모두의 마블'을 보자.
이 게임의 공식 네이버 카페 회원은 현재 99만 명. 1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인이 즐기던 놀이이며, 공식 게임사인 넷마블뿐 아니라 네이버, 한게임 등 다른 포털사이트 계정을 통해서도 놀이를 할 수 있었다. 당장 우리 집 아이들 둘 모두 이 게임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그 게임의 특유한 사운드 "마이턴!", "더블!" 이 울려서 학생은 당황하고 교사는 황당했던 경험들도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19년 전을 어제처럼 기억하게 하는 놀이
"1780년 봄, 진주 촉석루에서 악기를 연주하다 술을 마시며 노름을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19년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목민심서'를 지어 관리들의 청렴함을 강조하고,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고민했던 정약용이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때 정약용이 노름을 했던, 19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 놀이는 '쌍륙놀이'이다.
신윤복이 그린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두 사람이 쌍륙놀이를 하고 있다. 아직 말판을 들여다보면 놀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이다. 하지만, 오른쪽의 남자는 탕건을 벗어던지고 담뱃대를 입에 물고 놀이에 푹 빠져있는데 뭔가 잘 풀리지 않는 표정이다. 구경을 하고 있는 남성은 몸을 놀이판으로 쑤욱 내밀며 뭔가 훈수를 두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훈수를 두는 말 한마디를 했다가 함께 구경하고 있는 여성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오른쪽에 적혀있는 시는 "기러기 나는 울음소리 역력한데, 인적은 고요하고 물시계 소리만 아득하다'라고 적혀있다. 놀이를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모두 놀이에 푹 빠져있음을 글로도 보여주고 있다.
쌍륙놀이가 얼마나 재밌었으면 궁궐에 불을 낸 일이 있다. 성종 때의 일이다. 궁궐 안에 선대 왕과 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문소전이란 건물이 있었다. 이 곳을 관리하던 노비들이 이 곳에서 몰래 쌍륙놀이를 했는데 술내 기를 한 것이다. 그러다 서로 싸움이 붙었는데 화로를 차서 안의 돗자리가 불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왕조 사회에서 궁궐, 그것도 선대 왕과 왕후의 위패를 모시는 곳에서 술내기 노름이라니, 정말 간이 어마어마하게 컸던 노비들이다. 아니, 그만큼 놀이와 내기가 결합된 도박이라는 것이 중독성이 강했서였을 것이다.
쌍륙놀이는 쌍륙판의 각자 구역에 15개씩의 말을 배치하고 나오는 수만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모두 놀이판의 바깥으로 나오게 하면 이기는 놀이이다. 윷놀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사위의 두 숫자를 합쳐서 한 개의 말을 움직일 수도 있고 각각의 숫자만큼 두 개의 말을 움직일 수도 있으며, 상대편의 말이 두 개 이상 있는 곳에는 말을 놓을 수 없는 등 복잡한 규칙이 있어 여러 가지 전술이 필요한 놀이이다. 또한, 주사위 놀이의 특성상 '운'이라는 것을 필요로 한다. 아주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쌍륙' 즉 주사위 2개가 모두 6이 나왔을 때는 크게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놀이란 것의 특성이 희박한 확률이지만 이렇게 '한방'으로 역전이 가능할 때 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그 희망의 끝을 잡고 놀이를 계속하게 된다. '지금은 이렇게 불리하지만, 한방이면... 한방이면... 내가 이길 수 있어"
한 예를 더 보면 세종이 자신의 누이동생인 정선 공주가 병이 들자 사람을 보내어 병문안을 하게 하였다. 그런데 병문안을 갔다 온 사람의 보고에 따르면 정선 공주의 남편 의산군이 내시를 데리고 쌍륙놀이만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산군을 불러 크게 꾸짖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주가 병이 나서 내가 사람을 보내어 문병하게 하였는데도, 너는 병 증세가 어떠한지 알지도 못하고 내시를 데리고 쌍륙만 치고 있었으니, 조금도 가장된 도리가 없구나!”
19년 전을 어제처럼 기억한 정약용은 그 이후 목민심서에 이렇게 쓴다.
“쌍륙과 장기 놀이는 돼지를 기르는 종들이나 하는 짓이다.”
놀이는 일하다 잠시 쉬면서 하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집안 재산뿐 아니라 관청의 재산까지 사용하는 도박이 되기도 하니 정약용은 이를 경계한 것이다. 정약용이 말한 여러 가지 내기 놀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투전과 쌍륙, 골패라고 하였다. 아래 그림은 김득신의 그림이다. 밤을 새웠는지 눈에는 핏발이 서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라도 아까운지 요강과 타구를 갖춰놓고 놀이를 하고 있다.
김득신 밀희 투전
이러한 쌍륙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도 있었으며, 멀리 서양에서도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 놀이를 즐겼다. 서양에서는 백개먼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은 13세기 카스티야 왕국 알폰스 10세가 쓴 놀이의 서에서 묘사된 백개먼 놀이이다. 쌍륙놀이와 똑같은 놀이판임을 한눈에도 알 수 있다.
놀이는 즐겁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이 쌍륙은?
놀이는 즐겁다.
특히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지역에서 유행한 놀이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나 역시 이 놀이판과 규칙을 이용한 놀이를 만들어 아이들과 자주 노는 편이다.
놀이와 교육이 합쳐졌을 때 교육적 효과가 클 때가 있다. 놀이에 심한 내기를 걸어 도박이 되는 것처럼 너무 놀이에만 집중하여 교육이 흐트러지는 것을 적절히 경계하여 계획한다면 놀이를 활용한 교육은 활용도가 높다.
그래서 이 쌍륙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조선 식민지 경영을 위한 세뇌용 놀이판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아픈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