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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Jan 30. 2021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돈으로 사면되니까!

모든 학생들에게 국가가 용돈을 지급합시다.

2018년 어느 날 오후 수원의 한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처음 진형민 작가를 만났다

5, 6학년 모두 합쳐 30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에게 진형민 작가의 첫 이야기는 자신이 친구와 함께 롯데월드에 간 이야기였다. 현재 가격으로 보면 어른들의 자유이용권은 56,000원.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단다. 그런데,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타려고 하니 줄이 너무 길더란다.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려 타려고 했는데 줄을 전혀 서지 않고 바로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이 있더란다. 그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매직패스를 구입한 사람들이었다. 원하는 놀이기구를 돈을 낸다면 (5회권 47,000원, 10회권 85,000원) 줄을 서지 않고도 탈 수 있는 매직패스. 순간적으로 혼란이 왔더란다. 자유이용권이라는 큰 금액을 지급하고 놀이기구를 타려고 왔는데 매직패스를 구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받은 것이다. 매직패스는 말 그래로 매직이다. 다른 사람들이 2시간이라는 시간을 소비한 대신 돈을 더 소비하여 놀이기구를 바로 탄 것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지만, 시간을 돈으로 산 경우이다.

이 매직패스를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졌다. 돈을 더 내었으니 공정하다는 의견과 자유이용권을 구매하였으므로 동일한 기회를 주어야 하니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공정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이때 책의 내용이 등장하였다.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의 세 주인공 오초원, 김상미, 박용수. 그중 박용수는 축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축구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축구화를 살 돈이 없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급식 줄을 대신 서 준다. 급식실에 줄을 섰다가 친구가 오면 바꿔주는 대신 돈을 받는 것이다. 최규도라는 친구는 급식 줄을 서는 대신 그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운다. 영어단어를 외울 때마다 엄마가 용돈을 주니 최용수가 대신 급식 줄을 서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도 자신에게는 이득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규도가 돈을 주고 급식 줄을 서게 하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돈을 지불하였으니 공정하다는 의견과 새치기를 당한 다른 친구들의 입장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아이들에게서 제시되었다.

진형민 작가의 이 이야기는 북유럽 국가의 복지정책으로 흘러갔다.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공정하게 학용품이나 간식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국가가 학생들에게 용돈을 준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16세까지 매달 13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핀란드는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매달 4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부러움의 탄성! 이 이야기는 결국 이러한 복지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로 나아갔다. 어떤 사람을 우리의 대표자로 뽑느냐에 따라 국가의 정책은 변화될 것이므로 후보자의 공약을 잘 듣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1년 1월 30일, 여전히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가 잔뜩 움츠려 있는 시기.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서는 이틀 전 이재명 지사가 1인당 10만 원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전교생 41명의 충북 옥천군 판동초등학교의 기사!

이 초등학교에서는 작년 10월부터 일주일에 2천 원씩 매점 화폐로 지급하는 '매점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학교의 매점은 학부모와 교사로 이루어진 '팔판동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친환경 간식만을 판매하고 있으며 수익은 모두 학생들에게 환원하는 이 매점에서 수익금을 학교에 기부금으로 넣자 이 수익금을 바탕으로 매점 기본소득을 주기 시작하였단다. 이 시도는 다양한 형태의 결과를 가져왔다. 용돈이 부족하거나 못 받는 친구들이 매점을 많이 이용하게 되어 학교 내 불평등이 조금은 사라졌으며, 아이들이 학교 오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특히 아침을 못 먹고 오는 아이들이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가 자신들을 지지해준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모두가 이용하는 이 곳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통해 환경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에는 학교 자체 예산으로 지급할 계획이란다.


이 신문기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2010년 초중고 학생들의 무상급식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포퓰리즘이니 뭐니 말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무상급식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용돈, 학비 보조금 등의 형태로 돈을 지급하는 것은 2010년의 논쟁과 똑같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에게까지 지급하는 것보다 소득이 낮은 계층을 '선별'하여 지급하는 것이 국가예산을 사용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난 그 답은 이미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학교들에서 특정 아이들을 선별하여 '아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 선별적 무상급식의 문제처럼 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가난한 아이들이라는 낙인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특정 장소에서 몰래 실시하지만 결국은 다른 아이들도 알게 되어있다.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왜 저 아이들만 아침에 먹을 것을 줘요라는 질문이 나오고 아침을 먹는 아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선별과정에서도 인권침해적 요소를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판동초등학교는 어떤가?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지급되는 매점 기본소득을 통해 매점에서 사 먹으면 되는 것이다. 작은 학교라서 가능했는지도 모르는 이 학교의 시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으므로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면 시간이 공정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그 돈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국가로부터 용돈을 받는다. 그 용돈으로 학용품이든 간식이든 자유롭게 산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꿈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까? 난 이런 이야기들이 얼른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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