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권정생 <슬픈 나막신>
"바다 건너 조선 사람의 나라가 있니?"
"그렇단다"
"그럼, 무엇 때문에 여기 와 있니?"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벌러 왔단다"
준이는 자꾸 목이 소물거리고 콧등이 찡해졌다. 바느질을 하면서 구슬프게 부르던 어머니의 타령소리가 귓바퀴에 뱅글뱅글 돌고 있다.
"준아, 그런 게 아니야. 조선 사람은 나쁘지 않어. 그리고 일본 사람도 역시 가난하단다."
에이코는 기어코 검은 눈에 눈물이 맺힌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슬픈 나막신>.
일본의 한 빈민가 마을에 사는 일본인들과 조선인들. 그 속에서도 조선인을 차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차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에이코는 준이를 좋아하지만 준이는 하나코를 좋아한다. 에이코는 자신의 가난하고 힘든 삶 때문에 부자집 아이이자 준이가 좋아하는 하나코를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조선을 착취하고 차별하고, 지주로서 조선인들의 땅의 빼앗지만 '일본 사람도 역시 가난하단다'라고 말하는 에이코도 존재한다.
전쟁에 나간 아들 타로우를 그리워하며 1년이 넘는 시간동안을 아파 누워있던 에이꼬의 아버지 오까미씨가 죽었다. 집안은 아끼던 모든 물건을 다 팔았지만 제대로 오까미씨를 고칠 약도 제대로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버지의 병수발과 집안의 가난함에 아이임에도 어른이 된 에이꼬.
위로를 하기 위해 온 친구 하나꼬를 만나 놀고 싶어진다. 이제껏 집안 일로 제대로 놀지 못했던 것까지 마음껏 놀고 싶어진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친구들과의 놀이로 채우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술래잡기를 하다 쓰러진다. 함께 한 아이들은 에이코가 죽은 줄 알고 크게 놀라 어른들을 부른다.
집안에 눕혀진 에이코. 어른들이 에이꼬를 살폈지만 열은 없다.
"에이꼬야, 배고프니?"
"......."
방 안은 가난으로 가득 차 있다. 낡은 장롱은 군데군데 금이 가고 빛이 바래어져 있다. 판자 쪽 천장은 나가야의 어느 집과 똑같이 새까맣게 파리똥으로 더럽혀져 있다. 부엌 쪽 미닫이의 창호지가 누렇게 때가 묻고 더덕더덕 조각종이가 덧붙여져 있다. 거뭇거뭇한 다다미장의 올이 가실가실 일어나 마른 버섯 같았다.
"에이꼬야, 오늘 점심 못 먹었지?"
청송댁이 말을 바꾸어 이렇게 물었다. 에이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눈 언저리에 이슬 방울이 핑 고인다. 분이네 어머니 호남댁이 코를 찡 추술러 올렸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아침, 에이꼬는 죽은 채 발견이 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그 전쟁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행복한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에이꼬보다 '매일 매 맞고, 동생들을 봐야하고, 누더기만 입고 냄새가 나서 친구들이 싫어하는' 분이가 더 불쌍하다는 단순한 계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틈으로 기웃거리던 준이는 하나꼬에게 물어보았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빌고 있나봐?"
하나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죽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있단다."
"저렇게 빌면 죽지 않니?"
"무서우니까 빈단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무서움이며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불타버린 빈 마당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이리와 아기양들> 연극놀이를 했다. 서로서로 엄마 양도 되어보고, 이리도 되어보고, 아기 양도 되어 봤다. 나쁜 이리가 마지막에 물 속에 풍덩 빠져 죽을 때 양들은 일어서서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친다. 아이들은 진짜 기뼈 뛰었다.
준이는 문득, 바다 건너 빼앗긴 저희 나라인 조선을 생각했다. 나쁜 이리 배 속에 들어있는 아기 양들 갔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엄마 양이 와서 구해줄거야'
준이는 그 엄마양이 누구인가 찬찬히 가늠해 보았다.
'우리 엄마가, 미국이 전쟁에서 이기면 조선을 금방 되찾을 수 있다고 했어'
그러나 준이는 고개를 저었다.
'미국이 엄마 양이 될 수는 없을거야'
무서운 폭탄으로 집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미국도, 일본조, 모두가 서로서로 잡아 먹으려는 이리들만 같았다.
공습으로 모든 것이 폐허로 바뀐 도쿄 혼마찌.
집이었던 곳은 불에 타 흔적만 남았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매일 <이리와 아기양들> 연극놀이를 한다.
노래, 시, 놀이는 시대를 반영한다.
엄마 양이 <집이 없어 거적때기 몇 장 걸친 움집에 사는, 배고픔에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는 이 일상>에서 아기 양인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바라지만, 그 어디에도 엄마 양은 없다. 자신들을 잡아먹으려는 이리들만 가득한 세상이다.
하지만, 해가 지면 움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저녁은 해도, 사람도, 힘들었던 하루의 일들도 모두 거두어들인다.
불확실한 내일이라도 맞이하기 위해서...
권정생 작가의 시선엔 일본인과 조선인의 구분이 없다. 전쟁 속에서 피해 받는 사람들, 영문도 모른 채 전쟁 속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이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