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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May 26. 2021

정조의 비둘기와 유해동물 비둘기

비둘기는 죄가 없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비둘기. '비둘기'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평화'를 떠올릴 것이며,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유해동물'을 떠올릴 것입니다.


'유해동물' 비둘기

집비둘기가 2009년 5월 31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해동물은 '국민 재산과 생활에 피해를 주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비둘기가 버려진 음식물 등을 먹으면서 배설물에  사람에게 해로운 여러 가지 물질이 섞여 있고,  날개 깃털에 각종 해충과 바이러스가 많아 사람들에게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둘기의 배설물은 강한 산성이 있어 건물이나 문화재를 부식시킵니다.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지10층석탑은 현재 유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탑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반면 이 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산성비로 인한 부식의 우려가 있어서기도 하지만, 비둘기의 배설물로 많이 부식되어 훼손되자 유리막을 씌우게 된 것입니다.

비둘기 배설물로 훼손되자 유리막으로 보호를 하게 된 국보 2호 원각사지십층석탑


옛 문화유산 속 비둘기의 상징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인 것은 서양적 개념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이야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킨 대홍수로 세상은 물에 잠겼고 방주에 탄 노아와 그 식구들, 동물들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끝났는지 알기 위해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다시 돌아온 비둘기의 입에는 올리브 나뭇가지가 물려 있었습니다. 그 올리브 나뭇가지는 홍수가 끝나며 땅이 드러났다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의 나쁜 행동과 다툼으로 비롯되었으므로 홍수 후의 새로운 세상은 곧 모든 이들이 착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물어온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양에서 비둘기의 상징은 무엇일까요?  동양에서 비둘기는 장수의 상징이었습니다.

혹시 '구구하고 우니까 99살까지 살라는 의미로 장수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요? 재밌는 생각이지요?  비둘기가 장수의 상징이 된 것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비둘기 구(鳩)라는 한자가 오래 구(久)라는 한자와 음이 같습니다.  중국에서는 발음이 같으면 그 뜻도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는 오래 산다라는 '구'의 뜻을 받아 장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둘기가 물을 마시는 방법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새들은 물을 마실 때 부리에 물을 머금은 다음 목을 들어 물을 마십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물을 부리를 대고 빨아 마십니다. 비둘기의 이런 물을 마시는 습성은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는 동물이라는 인식을 주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잘 먹지 못하고 잘 소화시키지 못하지요. 그래서 잘 먹고 잘 소화시키는 비둘기가 장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중국 <후한서>라는 책을 보면 일흔, 여든, 아흔 살이 되는 사람에게 옥지팡이를 선물로 주는데 그 지팡이 끝을 비둘기 모양으로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옥은 변하지 않는 영원불멸을 상징하며, 비둘기는 장수를 상징하고, 지팡이는 노인의 지혜로움과 권위를 상징하니 더할 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1795년 수원 화성행궁에서는?

1795년 2월 9일부터 2월 16일까지 8일 동안 조선에서는 어떤 행사가 있었을까요?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60세 생신을 축하하는 환갑잔치를 수원의 화성행궁에서 열었습니다. 정조는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수원화성으로 왔다가 잔치를 연 후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기록을 자세히 남겼습니다. 그중 하나의 그림이 '낙남헌양로연도'입니다. 정조는 어머니의 생신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백성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즐기기도 하였으며, 특별 과거시험을 열어 그 기쁨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중 하나로 양로 잔치도 열었습니다. 조정의 신하와 화성에 사는 노인 수백 명을 불러 벌인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서 정조가 준 선물이 무엇이었을까요? 노란 비단 손수건을 매단 지팡이와 비단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꽃과 음식을 내어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생신을 함께 즐겼습니다.

선물로 준 지팡이의 끝은 비둘기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림을 확대해서 살펴볼까요?

장수의 상징인 비둘기 모양처럼 보이시나요? 비둘기 모양이 장식된 이 지팡이를 비둘기 구(鳩)라는 한자를 사용하여 '구장'이라고 합니다.



누구에게 유해한 동물일까요?

평화의 상징이면서 장수의 상징인 비둘기. 비둘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짝을 바꾸지 않아 부부간의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비둘기가 유해동물이 되었습니다.  비둘기는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길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었던 비둘기가 유해동물이 된 것은 비둘기가 변해서일까요? 도시에 살아가는 비둘기에게 사람들이 모이를 줌으로써 먹이가 풍부해진 비둘기가 급격하게 번식하면서 생긴 문제이며,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수천 마리의 비둘기 날리기 행사를 위해 많은 수를 사육했기 때문입니다. 유해동물로 지정되었지만 비둘기의 수는 더욱 늘어나 2020년 대한조류협회가 발표한 집비둘기의 수는 100만 마리 이상으로 생각되며 비둘기 관련 민원은 2017년 714건, 2018년 1073건으로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제공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을 뿐이지요. 그런 비둘기와 사람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자연에서 먹이를 구할 수 있도록 인공적인 먹이를 차단하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는 비둘기의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아의 비둘기와 정조의 비둘기는 사랑받는 비둘기였습니다. 비둘기가 다시금 평화와 장수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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