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몸을 씻어야 할 사람이 잘못되었다.

<몸을 씻는 냇물> 홍제천

by 랄라라

1637년 1월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조선은 패전국으로 청의 여러 가지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무엇보다 청이 승전국으로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끌고 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약용의 <비어고>에는 청나라로 끌려간 사람은 60만 명이 넘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은 그 많은 사람들을 채찍으로 휘두르며 끌고 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 매질에 죽어갔다.

청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갔을까? 군사나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포로는 매매를 할 수 있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돈을 많이 지불할 수 있는 양반 사대부의 여자들을 포로로 많이 잡아갔다. 청의 수도 심양에서 '포로 매매시장'이 열렸고,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집안에서만 가족을 찾아 다시 사들여 데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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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는 냇물>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동화이다.

시골의 사는 이대감은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하얀 상복을 입은 그는 궁궐을 향해 '삼배구고두례'를 한다. 이마는 깨져 피가 흐른다. 마을 사람들은 이대감의 충정에 가슴이 퉁탕거린다. 이대감이 들어간 자리에 하인 우서방은 말한다.

"우리 대감님이 하는 것을 똑바로 봤지요? 임금님이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 고생을 하는데 신하인 우리 대감님이 편안하면 안 되는 거요. 우리 대감님은 임금님에게 피를 흘려가며 충성을 한 것이요. 나중에 누가 궁궐에서 나와 물으면 오늘 이 일을 자세하게 말해야 하오"

하지만, 우서방의 그다음 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만약 오랑캐가 우리 마을로 쳐들어온다면 우리 대감님도 오랑캐의 왕에게 큰 절을 세 번하고 머리를 아홉 번 땅에 쾅쾅 찧었다고 말해야 돼요. 임금님이 했던 것처럼 말이오. 그래야 오랑캐들이 좋아하며 잡아가지 않는단 말이오"

이대감이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대감에게는 <화홍>이라는 딸이 있었다. 청의 군대를 피해 미리 남쪽 마을로 피난을 보냈는데, 이 마을을 청의 군대가 덮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끌려가게 되었다. 이대감은 딸을 구하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였을까? 정작 마을의 한 소년 우마를 찾아 화홍을 데려와달라고 말한 사람은 이대감의 부인이다. 이대감을 딸을 데려오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절을 잃은 여인이 집에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되돌아온 여인인 '환향녀'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사로잡힌 부녀들은 비록 본심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절의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1638년 <인조실록>의 기록이다. 환향녀를 버리고 재혼을 허락해달라는 주장과 환향녀와의 이혼 및 재혼을 금지해달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온다. 집안의 돈으로 돌아온 환향녀들은 청에서의 노예 신세는 벗어났지만 남편과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던 것이다.

결국 인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에서 되돌아오는 길에 있는 홍제천에서 몸을 씻도록 했다. 그리고 홍제천에 몸을 씻은 여인들에 대해 그 정절을 문제 삼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반가에서는 그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끌려간 사람들에 대한 해결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 개인이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없었고, 고통이 겪어야만 했다.

되돌아온 환향녀에게 책임을 물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대감은 딸 화홍이 은장도로 자결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화홍은 당당히 말한다.

"남의 눈이, 벼슬이 자식보다 더 중요해요? 그럼 됐어요. 나도 그런 아버지 필요 없어요.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책임이에요?"


홍제천에 몸을 씻어야 하는 것은 '환향녀'가 아닌 지키지 못했던 남편과 아버지, 국가와 왕인 인조였어야 한다. 되돌아온 사람들에게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와 사과를 했어야 한다.

물은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 그래서 무엇을 씻어야 할지를 먼저 판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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