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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Aug 03. 2020

다시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0대 초반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무한한 자신감으로 가슴이 뜨거웠었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날들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을 만큼 20대의 나는 열정으로 가득했었고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청년들이 그러했듯 나도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열병을 앓기도 했었다.


7년이란 긴 세월을 첫 직장에 오롯이 바쳤던 나는 생애 첫 사표를 내던 날, 풋풋하고 순수했던 나의 20대와 작별을 고해야 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한 발을 내딛으며 나의 새로운 시작을 스스로 응원했었다.  


좀 더 성숙한 내가 되기를 기대하며 맞이했던 나의 30대는 험난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꿈꾸기를 포기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에 마치 항복이라도 하듯 나는 여러 번의 사표를 내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 번째 사표를 내던 날, 나는 낯선 나와 마주하며 시리게 아팠다.


거울 속에 내비치는 변해버린 외모만큼이나 나의 내면도 어둡게 변해있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인생을 살뜰히 살아내는 동안 수많은 도전을 했었고 그만큼 직면해 왔던 실패도 적지 않았었다. 그런 실패들을 내딛고 언제나 일어섰던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 자만했었는지도 모르겠다. 30대 끝자락에서 예상치 않게 맞이했던 하나의 마침표로 나는 절망을 느끼며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절망이 나를 무너뜨리고 인생이 힘들다 하여도 시간은 야속하게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째깍째깍 덧없이 매일 흐른다. 인생은 저절로 견뎌지는 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채워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평소 꿈이 작가도 아니었다. 그저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나는 돈은 들지 않지만 시간을 쓸 수 있는 글쓰기를 택했던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하게 보듬어준 것이 브런치였다.  글을 쓸 줄도 몰랐던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며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글을 끄적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구독자가 아무도 없었을 때 브런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의 지인들은 기꺼이 가입까지 해가며 구독을 눌러주었고 나의 새로운 도전을 함께 해 주었다.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어렵게 쓴 글을 하나씩 발행할 때마다 댓글과 하트를 남겨준 브런치 작가분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아픔에 같이 공감해 주었고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행복도 브런치 작가분들과 나누면 배가 되었다.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1890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갈라테이아를 조각하고 사랑에 빠졌을 때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인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 간절히 원하고 기대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의 유래이다. 내게도 이 피그말리온 효과는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


브런치 작가분들은 재능이 없는 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고 이를 발판으로 웹소설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물론,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한 웹소설 쓰기는 형편없는 내 글솜씨로 2주 만에 실망만을 남긴 채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지만 완결이라는 목표는 잊지 않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난 주말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 박 여사님을 만나기 위해 친정집으로 향했다. 내가 사표를 썼을 때에도 우리 박 여사님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랬었다. 내가 하는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내게 한 첫 말은 "잘 지냈니?"가 아닌 "왜 브런치에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만 올리니?"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가 내 글을 그동안 읽고 있었던가!?'


나는 의아해하며 우리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그러자 내 동생이 마지못해 옆에서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 박 여사님은 사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만큼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 그녀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에 매일 밤 동생을 괴롭히며 브런치 가입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 박 여사님은 평소 자식 자랑을 하지 않으신다. 그녀는 남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싫어한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면 배로 갚아줘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그런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딸이 작가가 되었다며 브런치 구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조금은 부끄럽기도 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글을 발행할 때면 구독자인 우리 엄마에게 알림이 갔고 그 알림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곧바로 내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뜬금없이 웹소설을 쓴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만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으니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알림을 계속 기다렸으리라.


나는 엄마에게 브런치 글을 자주 쓸 수 없었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웹소설을 쓰고 있고 하루에 한 편씩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읽는 이가 별로 없어 포기해야 하나 하고 생각 중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며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노력이 결실을 맺을 날이 있을  테니,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찬란했던 20대의 나처럼 나도 글쓰기를 통해 다시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종착은 동시에 시발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새해가 오는 것이다. 또 한 해의 꽃들이, 또 한 해의 보드랍고 윤기 있는 나뭇잎들이, 또 한 해의 정다운 찻잔, 웃음, 죄 없는 얘기가 우리 앞에 있다... 새해에 나를 찾아올 화려한 파라솔이 안 보이더라도 파란 토요일은 차례차례 오고 있을 것이다." -피천득 수필 [토요일] 중


나는 항상 그랬다. 어려움이 닥쳐도 실패로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나는 포기 대신 항상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이번 글쓰기 도전도 언젠가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나답게 다음 여정을 선택할 것이다. 종착은 동시에 시발점이므로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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