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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Aug 11. 2020

글쓰기 방해꾼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첫 줄부터 막막하기만 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혼자만 느끼는 고민의 시간도 가져본다. 아무래도 내가 진짜 작가 흉내라도 내려나 보다. 


비가 며칠 째 쉬지 않고 추적추적 내린다. 가랑비 같이 가늘게 스며드는 비나 세차게 살갗을 베는 폭풍우나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이젠 지겹기만 하다. 커피를 더욱 향기롭게 만들었던 빗소리도 이제는 내 귀를 괴롭히는 소음이 되었다. 이 긴 장맛비가 내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점심때 연남동에 있는 더 부엌(The bueok)이라는 곳에 갔었다. 이름만 봐서는 분명 따뜻한 집밥을 팔 것 같은데 이곳은 요리 주점이란다. 그런데 떡볶이가 맛있어서 점심에 떡볶이가 그렇게 잘 팔린다고 가게 앞에 적혀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떡볶이가 맛있길래 이런 글귀가 적혀 있을까! 


그냥 무작정 지인들과 들어가 봤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떡볶이 비주얼은 조금 실망감을 남기긴 했지만 이곳은 주인의 정(情)이 남다른 곳이었다. 자꾸 주방에서 누군가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쪽을 힐끔힐끔 쳐다봐서 불편함을 느끼던 차에 서빙하는 직원이 한 마디씩 툭 던지고 가는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특별히 사장님이 떡볶이 양을 많이 주셨어요.”

“공깃밥만 넣어서 국물에 비비면 맛이 없으니 이거랑 같이 드세요.”


원래 메뉴에 없는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려고 공깃밥을 시켰는데 참기름까지 센스 있게 넣어주고 김가루와 잘게 자른 단무지도 그냥 주었다. 그냥 밋밋할 뻔했던 볶음밥이 갑자기 너무 맛있어져서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마구 들이밀었다. 주방에서 우리를 쳐다봤던 사람은 이 가게의 주인이었다. 그는 계속 손님들의 모습을 체크하면서 필요한 것을 하나씩 채워주었다. 


간단하게 한 끼 때우려다가 윗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너무 풍족하게 잘 먹었다. 내가 지불했던 그 점심값에 비하면 예상 밖의 분에 넘치는 대접이었다. 그런 대접을 받고 나니 잠까지 솔솔 오는 게 그 가게 주인이 내 글쓰기를 방해한 게 틀림없다.  


집중하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타자를 치려는 순간, 갑자기 카톡이 계속 울린다. 점심은 잘 먹었는지, 재미있는 시간은 보내고 있는지 등 사소한 것을 물어보는 남편의 문자였다. 달달한 하트 이모티콘까지 보내는 걸 보니 우리 남편도 나의 글쓰기 시간을 마구잡이로 갉아먹으려고 한다.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책 한 권을 펼쳤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한 권을 그냥 앉은자리에서 쉬지 않고 쭉 읽고야 말았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글쓰기를 벌써 다 마치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이 또 나의 글쓰기를 지연시켰다. 


부족함 없이 하루를 알차게 보낸 나는 이렇게 소소한 방해꾼들의 도움을 받아 글쓰기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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