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지쳐서 방바닥에 스스로 몸을 맡기게 된다. 차갑게 스미어 오는 바닥의 기운이 머릿속을 깨이게 한 탓일까? 커피의 진한 카페인이 없어도 오늘은 정신이 맑다.
그 맑은 기운을 동력 삼아 나만의 공간에서 글이라도 써볼까 했다. 여러 생각을 끄집어내어 끄적여보지만 한 글자도 제대로 못쓰고 머뭇거린다. 그 기운은 벌써 사그라들어 어디에도 없다.
내가 가진 언어의 깊이가 매우 얕음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글쓰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내 안에 있으므로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될 터인데 글쓰기에는 왕도라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마냥 세월에 두둥실 맡기기에는 내가 가진 두려움은 크다. 그 두려움의 벽은 내 나이의 숫자가 견고해질수록 새로운 해가 오는 것을 근심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마흔이 코 앞이라며 친구들과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다. 숫자는 정직하고 내 마음과 같지 않음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미혹한 나는 불혹 해야 하는 세상의 기대가 반갑지 않다. 아직은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온 세상을 어지럽히는 바이러스, 길고 길었던 장마 그리고 거칠게 우리를 핥고 지나간 어제의 태풍까지 올해는 그 심보가 사납다. 그것들의 생애는 결코 길지 않다. 장마는 결국 끝났고 어제의 태풍이 오늘은 보이지 않듯, 바이러스도 언젠가는 부정적인 이름만 남긴 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미혹한 나는 나의 소중한 한 살이 허망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아 가혹한 한 해를 원망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두려워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그 두려움들을 극복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견뎌온 날들이 앞으로 견뎌야 할 두려움들을 극복하는 지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지금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슬픔은 접고 오늘을 견디자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