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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Nov 26. 2020

숨 고르기가 필요한 모두에게.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_장예원 지음>

내가 마지막 회사를 박차고 나온 후, 벌써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사표를 내고 나만의 시간을 처음 대면했을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나다니... 시간은 항상 속절없이 잘만 간다.


퇴사 후에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글쓰기를 미친 듯이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온전히 내게 집중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글쓰기는 돈이 들지 않으니까, 백수에겐 그저 최고의 취미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퇴사 이야기는 되도록 읽지 않았다. 모든 퇴사자들에겐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나는 나 자신이 껴안고 있었던 지지리도 궁상맞았던 퇴사 사정만으로도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SBS 간판 아나운서였던 장예원의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란 책을 왜 골랐을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아나운서의 퇴사 사정이 궁금해서? 말로 먹고사는 아나운서는 글을 얼마나 잘 쓰나 보기 위해서?


NO. 


그녀의 책이 작고, 가볍고, 짧았서였다.


단순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의외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힘든 요즘, 머리 복잡하게 어려운 건 딱 질색이다. 전문 서평가도 아니니 굳이 메모까지 하면서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1시간 안에 빨리 휙 읽고 홀로 사색의 시간을 잠시라도 가질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귀엽고 발랄한 표지를 넘기니 오랫동안 품은 꿈을 이룬 뒤, 두 번째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의 소개가 나와 있었다. 첫 장부터 부러움에 배가 아팠다. 나는 오랫동안 품은 꿈도 없고 그런 꿈을 이뤄본 적도 없는데...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
마음이 아프다고 솔직히 말하는 데도 이렇게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니...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중


23세에 지상파의 최연소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누구보다 빠른 스타트를 화려하게 끊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책을 통해 자신은 평범한 8년 차 직장인이었노라고 말한다. 평범한 우리처럼, 그녀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의 속없는 말에 상처 받고, 다시는 프로그램을 맡지 못할까 두려워 몸을 혹사시키기도 하면서 말이다.  


유명한 아나운서에게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사람이다.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일할 줄만 알았지 제대로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힘차게 달리기 위해선 숨 고르기가 중요하다고.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중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무작정 학원에 찾아가 자신에게 투자해 달라고 말했던 배짱도, 교수님께 도움을 청하던 그녀의 끈기도, 동문 선배 아나운서에게 메일까지 보낼 정도의 열정도 그녀가 꿈을 이루고 난 후엔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직장 생활도 버티기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무색무취의 아나운서가 되고 만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모습만 신경 썼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잃을 때, 삶은 무의미해진다.


보이는 삶에 젖어들기보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진짜 행복을 좇으려고 노력하는 것.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중


처음 외국에 나가는 동생을 위해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빡빡한 일정을 짜고, 열심히 모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애써 들어간 음식점을 도로 나왔던 그녀는 후회했다. 그때 더 즐길걸 하고 말이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가 남의 눈치를 보며 그냥 흘려보낸 세월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도 행복하기 위해서.


그녀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퇴사, 그리고 새로운 꿈.  앞으로 그녀는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까? 2번째 책을 준비하지는 않을까?


퇴사한 지 2개월 만에 떡하니 책을 내고, 또 첫 책이 발매된 지 일주일 만에 2쇄에 들어가고.


퇴사 잘했네.


나는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그녀를 더 이상 부러워하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페이스가 있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내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다.


지금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면, 작고, 가볍고, 짧은 에세이 한 권 읽어보길.

잠깐의 휴식이 큰 힘이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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