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1
앞으로 칫솔질도 해야 하고 분유랑 젖병도 끊고 우유로 전환해야 하고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도 바꿔야 하는데, 천기저귀 빨고 바닥에 오줌 닦는 일 따위는 이제 줄여도 될 거 같다. 100일쯤에 시작해서 돌까지 잘 버텼다. 스스로를 칭찬한다. 토닥토닥.
임신하자마자 지인들이 항상 하는 질문은 천기저귀 쓸 거냐는 것이었다. 내가 환경주의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 데다 몸조리에 집중해야 하는데, 정말 천기저귀 쓰냐는 것이다. 꾸준히 질문을 받으며,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자타공인 환경주의자인데, 실패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뒤, 당근을 뒤져 천기저귀를 모았다. 참 많은 엄마들이 천기저귀를 사서 빨아만 놓고 포기했다. 거의 새거나 다름없는 천기저귀를 아주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주변 지인들의 경고와 당근의 실패 스토리는 나를 더 도전적이게 만들었다. 해보겠다는 의지가 점점 강해져 갔다. 출산 전인데 어떤 계획인들 못 세우랴.
천기저귀를 쓸 양으로 종이 기저귀는 사다놓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변이 발생했다. 출산하면서 생긴 극심한 근육통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주는 기저귀 바리바리 챙기고, 남편은 퇴원 직전 급하게 마트에서 하기스를 샀다. 혼자 힘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천기저귀까지 사용하는 것은 내게도 남편에게도 못 할 짓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조금씩 깨달았다.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을.
천기저귀 처음 시도는 50일 즈음이었다.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됐고(착각이었다), 계획했던 것을 실행해 보고 싶었다. 산후관리사님이 있는 동안은 일회용 기저귀 사용하고 퇴근하고 나면 천기저귀를 사용했다. 우어어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힘들었다. 생각보다 자주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제 때 갈지 않으면 양갱이가 우니, 수시로 체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기저귀는 체감상 15분마다 가는 듯했다. 잠깐 앉았다 일어서면 갈아야 하는 느낌이었다. 겨우 나아가던 몸이 더 안 좋아질 거 같았다. 반나절정도 시도했다가 그 뒤로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천기저귀로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일회용 기저귀 사용하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단 한 사람 우리 엄마는 얼른 천기저귀 사용하라고 채근했었다. 엄마에게 ‘어쩜 갓 출산한 노산모 딸내미한테 그 힘든 걸 얼른 하라고 시켰냐’며 따졌다. 엄마는 ‘나 때는 물 끓여 삶고 널고 했는데, 너는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있는데 못 할 게 뭐냐’는 것이다. 그때 엄마 나이는 20대 후반이고 나는 40대 중반이라고요~
양갱이는 생후 80일에 요로감염 걸렸다. 요로감염은 원인은 대장균이고, 감염 통로는 100% 기저귀라고 했다. 게다가 양갱이는 중복요관으로 요로감염 한 번만 더 걸리면 수술할 수 있다. 다시 천기저귀를 도전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 최대한 자주 갈아주고, 항상 보송보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50일쯤에 반나절이긴 해도 예습한 것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수월하게 안착했다. 덕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요로감염 재발 없이 돌까지 왔다.
천기저귀도 적응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옛날 엄마들이 사용하던 크고 넓은 천을 접어 사용하는 방식 외에 다양한 천기저귀가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땅콩 기저귀다. 땅콩 모양으로 생긴 도톰한 기저귀를 사타구니에 넣기만 하면 된다. 세탁도 삶기 모드로 세탁기 돌리고 건조까지 시켜버렸다. 수시로 기저귀 가는 일은 여전했지만, 50일 때와 달리 양갱이는 오줌 쌀 때마다 울며 보채진 않았다. 보채지만 않아도 부담이 확 준다.
방수팬티는 울커버를 사용했다. 한국에 팔지 않아 직구해야 하나 하던 중, 당근에 올라와 있어 냉큼 샀다. 울커버가 실은 손이 많이 간다. 손빨래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라놀라이징‘이라는 양기름으로 방수작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울커버는 천연 소재라 폴리에스터로 만든 일반 방수팬티에 비해, 방수효과는 좀 떨어진다. 대신 통풍이 잘 된다. 요로감염은 재수 없으면 똥방귀로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통풍도 중요했다.
똥기저귀가 일이긴 하다. 요즘이야 똥이 되어, 변기에 떨어뜨리면 똑! 하고 떨어지지만, 100일 즈음부터 최근까지 무른 똥은 샤워기로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다 보면 변기 밖으로 똥물이 튀기도 했다. 1일 1똥이면 감사하지만, 장염 걸려 하루 10번 이상씩 설사해 대면 정말 힘들다. 힘들다고 일회용으로 갈아탈 순 없었다. 요로감염 걸릴까 봐 더욱 천기저귀를 사용해야 했다.
외출할 때나, 밤잠 직전에는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했다. 실은 출산 전에는 외출과 밤잠 때도 천기저귀를 써볼 요량이었지만, 닥쳐보니 안 될 말이었다. 참 철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요 앞 정자나 아파트 단지 돌아다닐 때는 천기저귀를 차고 나갔다. 소변을 보면, 유모차에서 갈았다. 물론 똥 싸면 바로 집으로 직행이다.
이렇듯 열심히 이어왔지만 양갱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힘듬은 갑절의 갑절이 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포기를 생각했다. 그냥 기저귀 일찍 떼어보자는 허무맹랑한 생각으로 기저귀 없이 내복 바지만 입히고 배변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엔 천기저귀 가는 일보다 바닥에 싼 똥오줌 치우는 게 나았다.
하지만 이 짓을 길게는 18개월까지 더 해야 한다는 추가 정보를 얻은 뒤론 의지가 확 줄었다. 한참 고민하다 얼마 전 돌잔치 치르느라 몸살 앓으면서 나약함이 스윽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의사 말론, 생후 1년이 지나면 요로감염 재발 가능성은 현저히 줄고 신장도 거의 회복했을 거라며, 매일 먹던 항생제마저 끊어도 된단다. 그 빌미로 이제 천기저귀든 기저귀 떼기든 그만하고 평범하게 남들처럼 종이 기저귀 쓰기로 결심했다.
9개월 동안 은근 남들에게 천기저귀 쓰는 것을 어필하고 놀라는 반응을 보는 뿌듯함을 누렸었다. 끝까지 천기저귀로 끝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나이를 생각하기로 했다. 양갱이는 10kg가 가까워지고 엄마 껌딱지에 종일 안아 달라도 보챈다. 오늘 특히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린다.
옛날 엄마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매일같이 물을 끓여 천기저귀를 삶고, 마당 빨랫줄에 널었겠지. 장마철에 빨래가 안 말라 기저귀가 없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기저귀만 했을까. 대체로 모유직수를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온 가족 삼시세끼 챙겨야 했다. 남편은 도와주기는커녕 애가 울면 버럭 하거나 반찬투정이나 했겠지. 밤마다 늦게 오고 주말에는 누워 잠만 잤겠지. 그러고도 서너 명 혹은 예닐곱은 낳아 길렀다. 정자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대체로 그런 삶을 살았던 거 같다.
엄마는 천기저귀 포기한 내게, ‘그래도 돌까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세탁기가 없어봐야 네가 기저귀를 떼려고 노력하지’라며 기저귀 떼기도 덩달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엄마는 주로 분유 먹이고 이유식은 다 사 먹이고 항상 가정부를 뒀는데 왜 내게 ‘세탁기 없는 ‘ 혹독한 삶을 상상하게 하시는가.
남편은 환경주의자와 거리가 멀다. 처음 천기저귀 쓰겠다고 공표했을 때 매우 우려했지만, 밤잠과 외출 시에는 일회용 쓰기로 한 나의 합리적임을 믿고 동의했다. 그리고 혼자 양갱이를 돌볼 때도 일회용 기저귀를 썼다. 남편에게 내가 선택한 고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든 천기저귀를 갈도록 양갱이를 잡아주고 바닥에 싼 똥오줌을 함께 치워줬다. 내 신념을 따라 그 고생을 함께 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습하고 더운 여름에 양갱이 엉덩이에 발진 나면 또 천기저귀 쓸 수 있으니, 우선 처분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때쯤엔 말귀 알아들어서 기저귀 갈기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