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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Sep 04. 2020

이것까지 버렸다 vs 이건 못 버린다

미니멀라이프와 추억

나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자랑스레 늘여놓다 보면 듣고 있던 친구들이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뭐까지 버려봤어?"


쿠쿠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싱크대에 전자레인지가 없고

탁자 위에 전기밥솥이 없는 부엌!

상상만 해도 너무 깔끔하지 않은가.

쿠쿠 전기밥솥 없애고 냄비밥 해 먹다가 2년 전부터 엄마가 한 때 사용하셨던 압력밥솥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

전자레인지 대신에 찜통에 넣어 찌거나, 프라이팬에 데워서 먹는다. 싱크대는 깨끗해졌지만 버튼 몇 번 눌러서 기다리기만 하면 편하게 먹을 수 있던 과거와는 작별인 셈이다. 엄마는 그 비싼 쿠쿠 전기밥솥을 왜 없앴냐며 버린 지 5년이 넘은 지금까지 잔소리하시고, 친구들은 전자레인지 없는 삶이 가능하냐며 왜 굳이 그런 삶을 사냐며 이해하지 못한다.

솔직히 불편하다. 한참 그 편리함이 그리웠었다.

냉동실에 있던 떡 하나 데워 먹겠다고 찜통 꺼내고 있을 때,  죽 먹겠다고 30분째 주걱으로 바닥 휘젓고 있을 때나 냄비 밥하다가 밥물이 넘쳐 가스레인지 닦고 있을 때 말이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다. 할머니 세대들은 그런 전자제품없이도 맛난 음식 충분히 해내셨는데 멀. 그리고 지금은 내 눈 앞의 깔끔함이 나의 불편함보다 우선순위가 높.


복작복작
끄알끔!


"버리고 후회한 건 있어?"


청소기


버리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그 어떤 불편함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생겼었다. 그래서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사용하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이쁜 빗자루&쓰레받기 세트도 샀다. 문자 그대로 "쓸고 닦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불편한 게 아니라 힘들었다. 빗자루로 먼지를 쓰는 행위가 얼마나 허리가 아프고 오래 걸리는지.. 손바닥은 왜 그리 굳은살이 베이는지.. 누가 보면 검도라도 하는 줄 알겠다. 나는 불편함은 몰라도 힘든 걸 감수할 만큼 깔끔한 성격은 못 되어서 결국 청소기를 새로 샀다. 그 이쁜 빗자루는 집 앞 복도랑 계단 청소할 때 사용하고 있다.



프라다 가방


입사하고 돈 모아서 산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명품 가방. 짙고 고급진 베이지색에 속은 깊고 넉넉하다. 손잡이와 바닥은 뱀가죽을 입혀 명품 냄새가 물씬 난다. 어깨에 매면 웬만한 옷이랑도 어울리고 다들 정말 이쁘다고들 했다.

10년 넘은 지금... 속지는 잉크에 물들고, 외지는 때가 타서 본연의 베이지색은 온데간데없다. 뱀가죽 손잡이는 너무 헤져서 레자 가죽으로 바꿨다. 처음의 고급스러움은 점차 퇴색되고 이젠 들고 다니기 부끄러울 정도가 되었다. 몇 번을 세탁소에 맡겨도 원래 색이 살아나질 않았다. 게다가 현대인의 고질병 거북목 때문에 무거운 가방은 들고 출퇴근하기 부담스러다. 옷장 속에 모셔놓은지 1년이 지나 매정하게 버렸다. 프라다 가방은 10년 넘게 내게 뿌듯함과 행복을 줬었는데.. 외피 묵은 때를 부끄러워만 여기다가 동네 옷체통에 구겨 넣어버리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사진이라도 찍어놓을 걸... ㅠ.ㅠ



"아직도 못 버리는 건?"


수제 팔찌


27살 때 혼자 아프리카 여행을 갔었다. 지금도 여행하기엔 멀어서 가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그땐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 자체가 드물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국인 남자 대학생 둘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여행 일정은 달랐지만 경로는 비슷해서 사나흘에 한 번은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서너 번은 만나서 참았던 한국어를 쏟아내곤 했다. 둘 중 한 명이 아프리카 현지인한테서 배워서 만든 내 이름 SUN을 새긴 팔찌와 편지를 선물해줬다.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에서도 그 애틋한 인연은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그 추억은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연즉 간직하고 있다. 프라다 가방은 버릴 생각이 이따금 나기도 했었고 마침내 버렸지만 그 팔찌는 단 한순간도 미니멀리스트의 목록에 들진 않았다.


호구


6년 전에 검도를 배운 적이 있다. 나는 초단이지만 어쨌든 유단자다. 1년 6개월 동안 매일 새벽 6시 반에 수업을 듣고 주말 오전에도 추가 수련에 동참했다. 새벽반에는 대부분 3단 이상의 찐검도인들이어서 나 같은 새내기가 오면 엄청 좋아라 해주시고 본인들의 노하우를 알려 주고 싶어들 하셨다. 관장님은 내 또래에 완전 잘 생기고 실력도 출중해서 새벽마다 검도하러 갈 맛이 났다. 발바닥에 피멍 들고 손바닥 사판에서 일하는 손마냥 르터도 한동안 참 행복했다. 그러던 중 사건사고가 좀 있었고 일은 바빠져 한두 달 쉬고 다시 시작해야지 했지만 그런지 4년이 흘렀다. 시간이 흘렀지만 18개월 동안의 검도에 대한 애정과 행복을 잊지 못해 나의 땀에 찌든 호구는 먼지가 쌓이고 있다. 언젠가 다시 할 그 날을 위해 말이다. (← 이 말은 미니멀리스트 기본자세에 위배되는 표현임)



편리함은 포기할 수 있어도

추억과 기억이 담긴 물건은  큰 기가 필요하다.

물건의 버림은 그 추억을 잊겠다거나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물건을 대할 때는 좀 있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미룬다. 이 글을 쓰며 주변을 다시 둘러보니 또 미련스레 남겨둔 게 천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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