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4 (8m 13d)
새벽에 양갱이와 정자에 나와 있으면 항상 지나가는 노부부가 있다. 서로 다정하게 의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양갱이를 엄청 이뻐해 주신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만 나오셨다. 여쭤보니, 할아버지께서 신장결석인데 결석 위치가 좋지 않고 혈압도 많이 떨어져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했다. 하루이틀 할아버지 없다고 산책 안 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파 나오셨댔다. 할아버지랑 함께 걸으면 걸어야 하는 분량이 있는데, 혼자 나오시니 그 분량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며 양갱이와 내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셨다. 그러다 점심 먹으러 아들이 온다며 이른 아침인데도 점심 식사 준비하러 자리를 뜨셨다.
지난 주말이었다. 주말에는 아들이 가족과 있어야 해서, 점심 먹으러 오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많다며 그날은 더 오래 우리 옆에 계셨다. 그러면서 할머니 젊은 시절 얘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는 85세로 41년생이시다.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셨다. 고등학생 때 남편인 할아버지를 만나셨다고 한다. 각 학교의 대대장(?)이셨던 두 분은 학교별 대대장 모임에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시대에 연애결혼이라니, 신여성이다. 할아버지는 경희대 한약학과에 입학하셨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등록금을 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1년만 다니고 군대에 가셨다.
할머니의 진짜 스토리는 지금부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다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고 한다. 그 시절 혼전임신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부모님이 무서워 집을 도망 나와 맨몸으로 군부대로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군부대 근처 다방언니의 배려로 단칸방에 얹혀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배가 부르고 출산까지 하게 됐다. 갓난애기와 다방언니네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군부대 근처 한 노부부 집으로 옮겼다.
뒤늦게 할머니 소식을 알게 된 할머니의 어머니는 이불, 기저귀, 쌀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고 한다. 군부대 이름만 아셨던 어머니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겨우 할머니를 찾아냈다. 두 분은 서로를 부여잡고 얼마나 우셨을까. 홀로 임신하고 출산해서 제대로 된 기저귀도 없이 애기 키우는 모습에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그 시절,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래도 시댁에 들어가야 한다며, 등 떠밀듯이 시댁으로 딸을 보냈다.
가보니 시댁은 가관이었단다. 단칸방에 시누이가 4명이 함께 살고 있었고, 그 와중에 시어머니는 만삭이었다. 막내 시동생이 할머니의 첫 아이보다 한 달 늦다. 만삭인 시어머니가 있을 때는 방에 군불을 떼 뜨끈해도 갓출산한 며느리만 있으면 방이 식어 있었단다. 장남 대학도 보내기 힘든 집안에서 혼전임신으로 들어와 갖은 고생은 다했다고 한다. 그동안 남편인 할아버지는? 군대에 계셨다. 하아… 그나마 다행히도(?) 그 시절에는 3년 복무기간이 대학생이면, 1년 반이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시댁에서 고생하는 딸 모습에 또다시 억장이 무너졌다. 그래도 할머니네 집은 여유가 있었는지, 단칸방 월세를 대주며 분가를 도와주셨다고 한다. 거기서 세 아이를 더 낳았다.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 상황이야말로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그 고생하는 와중에 세 명이나 더 낳아 넷이나 키우다니. 그 시절은 국가에서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고 하면서 셋째부터는 건강보험도 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를 할 줄 아시던 할아버지는 미군부대에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미군부대 근처로 집을 옮겨야 하는데 자식 네 명을 다 데리고 갈 수 없었단다. 엥? 그러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막내만 데리고 가시고, 아이 세명을 자취시켰다. 그때, 첫째 딸의 나이가 고1이었다. 할머니의 어머니 집 근처에 있는 단칸방에서 자취해서 반찬은 할머니의 어머니가 해줬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첫째도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인데 두 동생까지 돌보아야 하니 말도 안 되게 힘들었으리라. 다들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첫째가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 얼마 뒤 다시 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단다.
비교적 여유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 대학 가라고도 했지만,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라 아이 키우고 돈 벌어야 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아이고~ 할머니~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대학도 가고 집안에서 정해준 혼사로 결혼하면 만사가 편할 것을 이리도 고생하셨나요~ 라며 내가 다 덩달아 안타까워했다.
그제부터 할머니가 안 나오신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오셔서 보살피느라 못 오시는 건지.. 무릎이 아프셔서 못 오시는지.. 궁금하다. 번호라도 알면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싶은데 걱정이다. 별일이 아니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은 비가 와도 양갱이 와 정자에서 할머니를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으셨다. 걱정이다. 별일 아니어야 할 텐데.. 며칠 뒤 두 분이 다시 손잡고 양갱이 보러 오시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