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2 (8m 21d), 도리도리
이유식은 만 6개월 조금 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 시작할 때, 어떻게 만들지, 언제 먹여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초기1, 초기2 이유식이라느니, 알레르기를 봐야 한다느니, 하루에 몇 g을 먹어야 한다느니.. 출산 준비만큼이나 정보량이 방대했고 사야 하는 아이템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럴 때 나는 항상 미니멀리스트 병이 도진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집에 있는 도구로만 이유식에 도전하기로 했다.
숟가락
집에 있는 작은 숟가락을 사용한다. 마침 적당한 게 2개 있었다. 하나는 경옥고라는 한약에 달려 나온 나무 숟가락, 다른 하나는 도마살 때 서비스로 얻은 도자기 숟가락이다. 도자기 숟가락은 미끄러운 재질이니 양갱이 입에 넣어 쏙 빼기 좋다. 나무 숟가락은 던져도 부러지지 않으니, 종종 양갱이 손에 쥐여주곤 한다. 가끔 두 숟가락 모두 설거지통에 들어가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땐, 티스푼을 꺼내 쓴다. 도대체 왜 실리콘 숟가락을 굳이 사서 사용하는 걸까. 사용해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분명 더 편하긴 하겠지? 나는 그냥 집에 있는 물건에 적응하기로 했다.
컵
환경을 생각하면서부터 카페에 가면 항상 빨대를 빼고 달라고 요청한다. 그냥 컵에 바로 마신다. 요거트음료 마실 때는 스테인리스 스푼 하나 달라고 부탁한다. 깜빡하고 빨대가 꽂아 나오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다. 이러니 내가 양갱이에게 빨대컵을 주겠는가. 당연히 컵에 바로 마시게 했다. 처음에는 마시는 연습이 아니라 흘리는 연습을 하는 거같았다. 이제는 제법 꿀꺽꿀꺽 소리 내며 마신다. 컵에 물 마신 지 3개월. 흘리는 양은 현저히 줄었다. 기특하다. 양갱이용 컵은 집에 있는 작은 컵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스테인리스 컵이 있는데, 이건 양갱이가 언젠가 스스로 물을 마시기 시작할 때 주면 깨지지 않아 좋을 거 같다.
이유식용기
시판 이유식 용기를 재사용하고 있다. 초반에 내가 만든 이유식은 맛이 없어서 양갱이가 잘 먹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시판 이유식은 곧잘 먹어서 초반에 시판 이유식에 의존했다. 가끔 시기별 입자감 확인용 혹은 대비용으로 몇 개 사두었다. 클레 제품이 유일하게 유리용기라 클레 제품을 애용하고 있다. 클레의 유리용기는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용기에 붙어있는 라벨이 쉽고 끄알끔하게 잘 떼어진다는 것이다.
계량 저울
이유식용기에 소분할 때 저울이 필요했다. 시판 이유식 용기에는 ml 수치가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 계량 저울이 있지만 현재 잘 쓰고 있는 것은 아기용 체중계다. 1차 영유아 검진에서 저체중 소견을 들었는데, 남편이 이 때다 하면서 당장 샀었다. 당시엔 심각한 상황도 아니고 잘 먹이면 되는데 유난이다 생각했는데, 지금 이유식용 저울로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5g 단위까진 계량이 가능한 데다 항상 밖에 나와있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편하다.
다지기
지금까지 일일이 칼로 열심히 다지고 있다. 초기 이유식 할 때는 할만했는데, 후기로 넘어오면서 힘이 부친다. youtube에서 본 다지기는 모두 플라스틱 재질이라 사고 싶지 않다. 어깨와 손목이 아프지만 힘들어도 버티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쌀 비율이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쿠팡 애용자 남편이 스테인리스와 유리로 된 다지기를 발견했다. 조만간 요 아이템은 장만할까 한다.
스파츌라
주걱이 영어로 스파츌라(Spatula)다. 스파츌라라는 뭔가 색다른 이유식 도구를 추가로 사게 하는 상술로 보인다. 이유식 끓이고 섞는 용도일 뿐이니 집에 있는 주걱이면 충분하다.
큐브 실리콘 용기
이유식도 유행이 있더라. 요즘 이유식 트렌드는 토핑 이유식! 다양한 식재료를 반찬처럼 쌀죽과 함께 먹이는 방식이다. 미각 발달, 씹는 연습, 흥미 유발 등의 장점이 있다. 단점은 다 섞은 죽에 비해 맛이 떨어져 아기가 잘 안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갱이는 먹는 것에 열정적이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재료를 일일이 따로 다지고 소분하고 보관해서 먹을 때마다 꺼내 주는 것이 실은 귀찮다. 그래서 나는 토핑 이유식은 패스! 그냥 옛날 방식대로 다 섞은 죽으로 간다! 대신 얼리지 않고 사흘 치만 만들어서 최대한 신선하게 먹이기로 한다.
냄비, 칼, 도마
이유식용이랍시고 따로 사지 않았다. 다만, 도마는 가지고 있던 도마 중 하나를 이유식용으로 지정해 놓았다. 뜨거운 물과 소금으로 닦으면서 좀 더 위생을 신경 쓰고 있다.
믹서기
이유식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믹서기를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믹서기 없이 이유식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쌀미음과 같은 초기 이유식은 시댁에서 빌린 두유제조기로 만들었다. 쌀가루 살 필요 없이 집에 있는 쌀만으로 20분 만에 만들어졌다. 진짜 간편했다. 역시 육아는 아이템빨이긴 하다. 입자감 있는 이유식로 넘어가면서 두유제조기보다 (쓰던) 블렌더를 활용하고 있다. 요즘에는 이마저도 필요 없다. 충분히 불린 쌀로 푸욱 끊이는 수준의 입자감으로 먹이고 있다.
그 외 사용하지 않은 조리도구 - 체망, 계량컵, 절구
요리에 필요한 도구이기에 집에 있긴 하지만, 이유식 만들 때 사용한 적은 없다. 그닥 주도면밀하게 계량하거나 재료를 정성을 다해 손질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 위함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리도구는 블로그나 youtube에서 이유식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리도구로 소개한 도구들이다. 인기 브랜드를 추천하기도 한다. 집에서 잘 쓰던 조리도구도 없애고 어떻게 하면 부엌에 빈 공간을 만들어볼까 고심하는 나에게 이유식용 조리도구를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되려 미니멀리스트로서 도전정신을 일으키게 한다. 어떻게 하면 가지고 있던 조리도구로 이유식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니 재밌다.
그런데 결국 다지기를 사게 되어버렸으니, 좀 아쉽다. 매번 모든 재료를 칼로 다지기에는 어깨가 좀 아프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