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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조기 교육

2025.9.10 (8m 19d)

by 슈앙

어느 날, 엄마가 2층 올라가는 초록색 계단에 나를 앉혀놓고 물었다.

‘보미가 영어학원을 다닌다던데, 너도 다닐래?’

엄격했던 엄마가 다정하게 내 의견을 묻는 일은 드물었기에, 엄마가 원하는 대답을 해드렸다.

‘네’

당시 내 나이는 7살이었다.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보미와 함께 영어 그룹 과외에서 동사별 시제 외우기 시작해서 중학교 때까지 미국인 영어회화, 문학영어, 문법영어 등 항상 영어만 두세 군데 다녔다.


그렇다면, 나는 영어를 잘하느냐? 중고등 내내 영어 100점 맞은 기억이 별로 없다. 대학교 때는 토익 800 겨우 넘겼다.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잘해 보일 수 있겠지만, 돈을 그렇게 쏟아부었는데 그 정도면 항상 주눅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영어발음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 그래서 이 끝내주는 영어발음이 너무 부끄럽다. 7살 때부터 그 많은 돈 들여 공부시켜 겨우 얻은 게 고작 발음이니 말이다. 그래서 괜히 한국식 영어발음으로 말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친구 중 하나는 4학년에 처음 영어 시작해서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가는 것을 보고, 영어조기교육은 필요없다고 단정하게 되었다. 내 아이는 절대 영어조기교육을 시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4세 고시’, ‘7세 고시’는 일찌감치 영어 조기교육으로 스트레스받은 나에겐 경악할 일이다. 그 엄마들은 영어 조기교육을 안 받은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내 경험상, “책”을 가까이하면서 “모국어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성비 높은 영어 교육은 “자기 돈으로“ 어학연수나 장기 여행 다녀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데, 언어는 어릴수록 더 빠르게 흡수한다는 연구 결과는 나의 영어 조기 교육 반대론을 주춤하게 했다. 양갱이가 태어나면서, 수십 년을 다짐했던 내 소신은 쉽게 흔들렸다. 영어 동화책 빌려서 읽어 주고, ‘A.P.T.’ 같은 노래 외워서 불러주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전화 영어를 시작했다.


양갱이도 옆에서 들으면,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고 나도 영어공부하니 1석 2조다! 하루 중 제일 시간이 느리게 가는 오후 5시를 택해 매일 10분씩 하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시작해서 한 달이 넘었다. 회사 다니면서 했더라면 전화 오는 순간이 스트레스였을 텐데, 지금은 기다리게 된다. 양갱이 뒤치다꺼리하다가 종종 놓치기도 하고, 양갱이가 ‘꽥 꽥‘ 소리 질러 잘 안 들릴 때도 있지만, 꾸준히 하고 있다. 영어 선생님인 Vibes는 필리핀 사람으로 아이 3명이 있는 베테랑 엄마이다. 필리핀의 육아법도 듣고 재밌다.


실은 첫날부터 나의 영어 실력에 충격받았다. 못해도 너무 못한다. 7살 때부터 외웠던 시제도 제대로 못 쓰고, 문장 하나 제대로 끝내는 게 없다. 이런 영어 실력으로 매일 10분씩 하면, 과연 실력이 늘 거 같진 않았다. 그래서 또 하나를 더 시작했다. ‘Medium’이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Writing Platform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여긴 연회비를 내야 노출을 해주기에, 55000원까지 냈다. 이미 브런치에 올린 글을 번역해서 올릴 예정이다. 물론 번역기 돌리면 금방이지만, 목적은 영어 공부이니 일일이 작문하고 있다.


지금 양갱이 영어 조기 교육 안 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내가 영어 공부하고 있다. 내 계획은 육아휴직하는 동안 나도 영어 익히고 양갱이도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조기 교육이 아니라 조기 노출 수준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집에서 부모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지 않는 이상, 모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학원 가서 배우는 영어 조기 교육은 여전히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이래놓구선 영어유치원 보내면 얼마나 민망할까. 사람일은 모르는 것인데 너무 단정해서 말한 거같네..ㅎ)


그나저나, Medium에 올린 내 글은 왜 조회가 안될까. 아무리 그래도 누가 읽어줘야 흥이 생겨 글을 올리지.. go to my first Medium



Medium 에 올린 나의 첫 Writing




낮잠 2시간 반이나 자고 일어남. 분유 반이나 남겨 놓구선 라면 한 사발 먹고 일어난 것처럼 팅팅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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