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비' List 1번
저질 체력아, Goodbye
퇴사한 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내 생에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시간이라 생각하니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막상 내 앞에 놓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또 알 수 없는 '강박'에 휩쓸려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건만, 나는 어느새 '해야 하는 것, 쉬는 동안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퇴사 후, 2개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1시간 아침 예배 후, 20분 정도 기도 시간을 가졌다. 기도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며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고민했다. 졸음이 몰려와도 낮잠은 절대 자지 않았다. 왠지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종일 책을 읽었고, 성장과 성공한 인생에 대한 유튜브 콘텐츠를 찾아 헤맸다. 블로그로 돈 버는 방법, 부업 종류, 퇴사 후 월 1,000만 원 벌었어요... 휴우~몸은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왜 더 피곤한 것 같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난 왜 굳이 새벽에 일어나 스스로를 괴롭힌 걸까? 갓생을 살길 원했나? 사실 이 또한 강박과 불안으로부터 시작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그런 '불완전'한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실체 없는 것에 왜 자꾸 날 가두고 몰아세우려고 하는 걸까? 나는 왜 지금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
내가 왜 퇴사를 하려고 했는지 처음의 목적을 다시 생각했다. 돈과 삶의 안정을 쫓았던 인생 전반기의 마침표를 잘 찍고, 나만의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후반기를 내 페이스에 맞게 달려갈 준비를 하는 것. 즉, '재정비'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달릴 준비를 하려면 제일 우선시되어야 할 게 무엇이지?
그렇다. '저질'체력을 극복하는 것이 시급했다. 운동과는 담을 쌓은 지 오래고, 지하철 탑승이나 환승을 위해 올라야 했던 계단은 나에게 굉장한 '공포'였다. 조금만 올라도 허벅지 근육이 땅기고, 숨을 헐떡였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나와 여행을 가면 늘 '저질'체력이라 같이 여행 못 다니겠다고 타박을 준다. 어쩌다 야근을 하는 날엔 며칠 몸져누워야 할 만큼 난 체력이 좋지 않았다.
나도 뛰어볼까? 심폐 지구력에 취약한 나로서는 달리기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은 운동 종목 중에 하나였지만, 접근성과 효율성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특별한 장비 없이 가볍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 이게 웬일이야? 1분을 연속으로 달리지 못했다.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저질'체력이라지만, 내가 이 정도라고? 이내 받아들이고, 인터벌로 조금씩 체력을 끌어올렸다. 1분, 2분, 2분 30초 이렇게 깨알같이 뛰는 시간을 늘려가며 조금씩 몸이 적응할 수 있게 했다. 걷뛰를 인터벌로 10회 반복했는데, 솔직히 8-9회 즈음에 너무 힘이 들어 그냥 쭉 걸은 적도 태반이었다. 2개월 차에는 5분 연속 뛸 수 있게 됐고, 8분, 10분 이렇게 실력이 늘어갔다.
묘한 성취감이 나를 웃게 했다. 꽤 오랜 시간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이었다.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자신감도 생기고, 더 오래 달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몸도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주 6일을 매일 뛰었다. 폭염이나 비가 오나 꾸준히 자리를 지켰고, 100일이 흘렀다. 1분도 못 뛰던 나는, 4.8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엄습해 오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뿌리치기 위해 나가서 달렸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도,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달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억지로 기.어.나.가.서 달렸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쌓였다.
조금씩 체력과 건강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살기 위해 운동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저칠 체력 Goodbye
덤으로 나의 뱃살도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