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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Aug 21. 2021

오겡끼데스까

전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겨울을 좋아한다.

목을 감싸는 폴라 니트의 캐시미어 감촉과 코트의 푼더분함이 좋고 거리에 고개를 내민 붕어빵도 좋다. 여기서 붕어빵이란 슈크림이 아니라 팥을 듬뿍 밴 녀석을 말한다. 겨울은 영화를 보기 좋은 계절이다. 얇은 담요를 무릎에 덮고 달짝지근한 코코아가 담긴 머그잔에 손을 포갠 채 영화를 보곤 한다. 하이얀 눈으로 뒤덮인, 스크린 너머서도 겨울임을 느낄 수 있는 영화면 더욱 좋다. 울 눈은 차가운 표면과는 별개로 나에겐 따뜻하고 낭만적인 존재다. 뭐랄까, 벽난로가 훈훈히 집안을 데우고 오붓하게 칠면조를 구워 먹는 가족들의 정겨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오겡끼데스까"

영화 제목은 몰라도 대사는 들어봤을 법한 영화 '러브레터'는 겨울이라는 계절감을 가득 채우고 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부산에 살고 있어서, 눈으로 가득 차 있는 '러브레터'를 겨울마다 다시 보곤 한다. 소복소복 눈으로 뒤덮인 오타루라는 도시가 좋고, 발걸음마다 들리는 사박사박함이 좋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결혼을 앞두고 죽어버린 남자친구 '후지이 이츠키'를 못 잊고 지내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그의 학창 시절 동명이인의 여자 동급생이었던 '후지이 이츠키'와 우연찮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히로코'는 죽은 '이츠키'를 마음속에서 보내주기로 한다. 말 중에 가장 슬픈 말은 전하지 못한 말이라는데, 그래서일까 '히로코'는 확성기처럼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댄 채 외친다. 설산에서 저 구름 너머까지 들리도록, 목이 갈라지도록, 돌아오는 메아리 소리의 배가 되도록, 상대에게 반드시 전해지도록 수없이 외쳤다.

"오겡끼데스까"

"잘 지내나요"

"와타시와 겡끼데스"

"나는 잘 지내요"


'히로코'가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의 안부와 자신의 안부였다. 나도 히로코처럼 건네고 싶은 안부가 있다. 전하지 못한  이정표를 잃고 가슴 속에서만 표류하는 말들이 있다. 작년에 외할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교육자 출신 이어서일까, 나이가 여든을 넘기시고도 할아버지는 늘 엄격한 존재였다. 젊으셨을 적에는 더 무서웠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가 대학생일 무렵, 머리 한가닥을 노랗게 물들였는데 그 자리가 싹둑 잘려나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새해가 되면 손주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을 손수 A4용지 한 장에 적어 오셨다. 심지어 식사 자리에서 직접 읊어주셨는데, 벌을 받는 것처럼 조용히 듣고 있으면 숟가락을 뜨면서 편하게 들으라고 하셨다. 시골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엄격함으로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래도록 정정하실 줄 알았는데, 병마와 싸움을 벌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팔은 가늘어지고 몸의 곳곳에는 주삿바늘이 남긴 멍이 가득했다. 내겐 어렵기만 했던 할아버지라서 끝내 전하지 않은 말을 가득 남긴 채 할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사랑합니다."

전하지 않은 말은 이제는 못할 말로 모습을 바꿔 사라지지 않는 형벌이 되어 후회 가득 가슴속에 남아 있다.


전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전하지 않는 사람이 전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남은 생애 동안 마음을 자주 건네야겠다고 다짐한다. 포항에 계신 부모님과 부산에 있는 나의 거리를 전화 한 통으로 조금씩 좁혀야지. 타지에서 외로이 지내는 친구들에게는 별일 없냐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네어야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사랑을 고백해야지. 내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끄덕여주고 다독여 줘야지. 그들과 나 사이에 전하지 못한 후회가 싹트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지.


유달리 몽글했던 이번 겨울도 지나갈 테다. 또 새로운 겨울이 찾아 오겠지. 인연도 그렇다. 학교, 군대, 알바, 직장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다.  보자는 지키지 못할 무수한 말들만 건넨 채 말이다. 사람들과만 헤어진 것이 아니다. 매일 밟던 등굣길과 매일 가던 분식집과도 헤어다. 구룡포 초등학교 앞의 분식점 떡꼬치는 아직도 아른거릴 정도다. 어른이 되는 것은 헤어짐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일까. 헤어진 모든 것들에게 전하고 싶다.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스"

그리고 옆에 있는 내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번 전해야겠다.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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