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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Sep 20. 2023

이별 편지

200일의 썸머에게

안녕? 이제는 너에게 닿지 않을 편지를 보내.

봄의 시작에 만나 여름의 끝에서 너와 헤어지게 되었네. 봄과 여름은 다시 찾아올 테지만 너는 옆에 없겠구나. 붉게 물들 단풍과 하늘에서 내릴 하얀 눈도 보지 못하게 돼버렸네. 혼자 보는 건 의미가 없는데 말이지. 누군가 그러더라. 이별의 아픔이 반드시 만난 기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이별할 당시에 가졌던 좋아하는 마음에 따라 아픔의 크기가 다른 거라고. 지금 저며오는 마음의 통증이 사랑의 크기라 한다면 나는 너를 정말 정말 사랑했구나.


헤어진 다음날이 출근날이라 몹시 힘들었어. 이마에는 열이 나고 입맛은 없고 그런데 너 카톡 하나면 싹 다 나을 것 같더라고. 아직도 잘 모르겠어. 헤어져야만 했던 걸까. 그런 의문이 도톨이표처럼 머릿속에서 맴돌지만 그래도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까지의 네가 떠오르니까 붙잡지를 못하겠는 거야. '담담하게 보내주자' 그렇게 결심하고도 막상 그 순간이 오니 몇 번이나 붙잡고 싶단 생각이 든 거 있지?


모든 이별이 다 아픈데, 지금도 도처에서 이별하는 커플들이 넘쳐 날 텐데, 우리의 이별도 보통의 이별일 텐데, 머릿속으로는 다 아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마지막으로 너에게 한말 기억나? 나 요 며칠간 되게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잖아. 힘들었던 뺄셈보다 행복했던 덧셈이 더욱 컸기에 결국엔 너와 함께한 매 순간이 덧셈이었다고 했지. 너와 함께 한 200일이 보통 연애의 몇 년 보다 사랑으로 아로새겨진 시간인 것 같아.


헤어지고 나서 영화 '500일의 썸머'를 오랜만에 다시 봤어. 내가 꼭 톰 같고 네가 꼭 썸머 같더라. 딱히 큰 이유 없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과정이 우리 이야기 같았어. 사실 이 영화를 예전에 처음 봤을 때는 썸머를 이해하기 어려웠어.

'갑자기 톰에게 왜 마음이 식은 거지?

'자기는 결혼을 안 할 거라고 했으면서, 톰과 헤어지고 어떻게 바로 새로운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이번엔 썸머가 새롭게 보이더라. 톰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도 썸머였고, 만나는 동안 톰의 취향에도 귀 기울여준 것도 썸머였어. 썸머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결국 사랑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어. 썸머에게서 네가 오버랩됐어. 우물쭈물하는 내게 영상 통화를 걸어 먼저 만나자 한 것도, 요리를 못하는 나지만 내가 만들어준 김치전이 제일 맛있다고 추켜세워주던 것도 너였지.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어. 영화의 리뷰를 보고 나서 몰랐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듯, 우리의 사랑을 리뷰하면서 너의 최선들이 더더더 눈에 들어오네. 그런 너였기에 이토록 가슴이 아리나 봐.


나는 늘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지. 네가 물어본 적이 있잖아. 나도 오빠의 책 이야기에 나오게 되는 거냐고.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했어. 그런데 말이야, 네 생각을 할수록 한 챕터 속 이야기로 끝나기에는 너한테 받은 고마운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은 거 있지. 나는 너로 인해 나를 더 알게 되고 성장하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우리의 200일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나 봐. 첫 만남, 설렜던 순간, 고마웠던 순간, 떨어져 있던 순간, 마지막에 아팠던 순간까까지 필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어. 너는 나의 200일의 썸머야.


이 아픔도 하나의 성장통이겠지? 영화에서 톰이 이별 성장통을 겪으며 원래 하고 싶었던 건축가 일에 다시금 뛰어드는 것처럼, 나도 열심히 글을 쓰며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특히 이별을 헤쳐나가는 나를 기록하고 싶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난해한 사랑이 뭔지 탐구하며 체득하고 싶어. 이 순간에만 이런 글을 섬세하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아. 누군가 이별하는 이가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어. 누구보다도 내가 괜찮아졌으면 좋겠어. 에필로그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잘 지내고 있는 나였으면 좋겠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달리기도 하고 밝게 웃고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모든 이별하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

잘 견뎌보자, 잘 지내보자. 그리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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