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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Dec 07. 2023

패밀리맨, 각자와 우리 사이

추운 연말을 포근히 녹여줄 영화 패밀리맨을 보고

입김이 하얀 안개로 보이기 시작하는 겨울이 왔다. 겨울을 잘 보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겨울에 어울리는 제철 음식으로 뜨끈 뜨근한 전골 요리도 있고, 탱글탱글한 우동도 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이 제철음식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음식이 다가 아니다. 영화에도 제철 영화가 있는데,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방구석을 훈훈하게 덥혀줄 겨울 제철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패밀리맨, 니콜라스 케이지·티아 레오니 주연, 2000년 12월 30일 개봉. 그렇다. 무려 20년 이상을 묵은 영화이고, 12월 30일이라는 개봉일처럼 겨울과 연말을 위한 영화다. 위스키도 오래 숙성시킨 것이 값이 나가는 것처럼, 영화에 대한 나의 지론도 이와 비슷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명작으로 평을 받는 영화는 시대의 특정한 감성에 운 좋게 맞아떨어진 로또 같은 영화가 아니라고나 할까. 발렌타인 21년 산 같은, 겨울의 계절감을 듬뿍 담은, 겨울의 추위를 녹일만한 사랑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런던 히스로행 항공편의 마지막 탑승 안내입니다.”

20대 초반의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장소는 공항, 남자가 영국으로 인턴길에 오르려고 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남자는 여자를 달래듯 안아주며 말한다. 

“작별인사는 안 할게. 그럼 이별이 아닌 거야.”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그러고서 여자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진짜 멋진 일이 뭔지 알아? 그깟 계획 말고 지금 당장 우리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어떤 인생이 될지는 몰라도 우리가 함께 하는 인생 말이야. 난 우리를 택할래”

“계획 때문에 우리가 멋진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게 멋진 거야.”

그러나 남자는 걱정하지 말라며 결국엔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그리고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남자 잭은 월스트리트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투자전문 벤처 기업가가 됐다. 워커홀릭으로 가정은 없다. 그는 사랑이라는 무형의 감정보다 돈이라는 유형의 성취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됐다.


크리스마스이브, 잭은 편의점에 들렀다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영화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그는 현재와는 정반대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누군가 그의 배에 코를 박은 채 골골 자고 있다. 갑자기 5살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갓난 아기를 안고 그의 침대로 뛰어든다. 그러고선 방방 뛰며 “징글벨, 징글벨” 성탄절 노래를 부른다. 잭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최고층 펜트하우스에서 깼어야 하는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람. 이건 꿈일 거야. 자기 뺨도 때려보지만 눈앞의 생경한 장면은 그대로다. 꿈이 아니다. 그리고 자기 배에 코를 박고 있던 여자는 다름 아닌 13년 전 헤어졌던 그녀 케이트였다. 그렇게 시골 변두리 타이어 가게의 세일즈맨이자 13년 전 연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잭의 삶이 시작된다.


새롭게 주어진 삶을 거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잭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별안간 애를 쓸수록 가족에게 그리고 그 삶에서 형성된 친구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만 받을 뿐이다. 반항심을 속에 다분히 품은 채 새로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잭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어느새 어린 딸이 좋아하는 초콜릿우유도 제법 잘 타게 되고, 자신의 아내가 된 케이트를 보며 정말이지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빛나는 성공을 향해 달려오면서 눈에서 멀어졌던 건 '사랑과 가족'아닌가. 그 온기를 지금에서야 느끼며 이 삶에 반항심이 사라질 때쯤, 산통을 깨듯이 원래의 윌스트리트가 잭의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눈을 뜨니 적막한 고층 펜트하우스의 침대 위에 그 혼자 누워있다.


행복한 삶이란 건 무엇일까? 성공을 향해 달려왔고 자신의 삶에 한 줌의 의심도 없었던 잭. 그래서 돌아오고 싶기만 한 본래의 현실이었는데, 시골 변두리의 소박한 집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케이트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가 자꾸 아른거리는 건 왜일까. 잭은 케이트의 주소를 알아내 서둘러 그녀에게 향한다.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음부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자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다시 장면은 공항. 이제는 케이트가 떠나고 있다. 변호사인 케이트는 파리로 발령을 받아 미국을 떠나게 됐다. 그녀는 출국장을 눈앞에 두고 줄을 서고 있다. 잭은 두 팔과 다리를 힘껏 저으며 죽을힘을 다해 공항으로 달려간다. 가쁜 숨을 내쉴 틈도 없이 케이트를 발견하고선 그녀를 부른다. 다짜고짜 커피 한잔 하자고. 오늘 가지 말아 달라고. 케이트는 헐레벌떡 달려온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한다. 13년 전 우리의 이별에 아직 마무리가 필요한 것이냐고. 그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그러고 다시 출국장을 향해 돌아서는데 잭은 그녀를 또 한 번 놓칠 수 없다. 그가 말한다.


“우린 뉴저지에 집이 있어. 애도 둘이나 돼. 애니는 바이올린에 소질은 없는데 정말 열심이지. 조시는 당신 눈을 닮았어. 아직 말은 못 하지만 분명 똑똑할 거야.”

“집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우리 소유야. 할부를 120번만 더 갚으면 진짜 우리 집이 돼.”

“우리는 서로 사랑해. 결혼한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깊이 사랑해. 당신에게 노래도 해줘. 매일은 아니지만 특별한 날에 말이야.”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함께 이겨 내. 희생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함께라서 괜찮아.”

“당신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야. 당신 곁에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돼.”

“어쩌면 모두 꿈이었는지도 몰라. 외로운 12월 밤에 혼자 상상한 건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이 이 비행기를 타면 모두 환상이 되겠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도 잘 살겠지만 난 우리가 함께인 모습을 봤어. 그래서 난 우리를 선택할래.”

“부탁이야 케이트, 커피 한잔만 하자. 파리는 나중에 가도 되잖아.”


우리를 선택하겠다던 그녀 자신의 옛말이 생각나서였을까. 의아함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눈동자가 이윽고 13년 전 출국장에서 그녀의 눈동자처럼 변해있었다. 늦은 저녁, 창밖엔 눈이 내리고 둘은 공항 라운지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주 긴 이야기보따리를 풀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우리를 선택하겠어.”

각자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행복을 선택하겠다는 말. 함께라서 희생도 감수하고 때론 지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라면 괜찮다. 왜,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는 사랑의 힘을 믿고 싶다. 그 힘을 좇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을 우리로서 마주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사랑을 시작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현실의 팍팍함 때문일까. 현대의 사랑은 지나치게 계획적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 초반에 케이트의 말처럼 계획 때문에 우리가 멋진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게 멋진 것이 사랑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 잭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자신이 깊게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사회의 풍토에 동화되어 현실만 추구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저울질할 기회가 없기에 지금처럼 계속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돈과 성공 그리고 사랑과 가족. 무엇이 당신에게 더 중요한가. 그런 고민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패밀리맨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내면에 사랑과 가족 그 온기에 대한 열망이 숨겨 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그 불씨가 지펴졌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가 당신에게 시리고 외로운 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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