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불안은 나를 덮치는 폭풍이 아니라, 내 안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았다.
그 아이가 울 때마다 나는 외면했지만, 이제는 손을 내밀어보려 한다.
그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걸어보려 한다.
“괜찮아. 네가 있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어.”
그렇게 조금씩, 불안이와 친구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불안이 내 손목을 붙잡고,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을 두드린다.
숨이 막히고, 세상이 너무 가까워질 때면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불안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걸.
나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 두려움조차 내 일부로 껴안아야 한다는 걸.
내 안의 불안은 내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다.
언제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눈에 띄지 않게 자라난 거다.
손이 벌벌 떨리는 증상이 잦아졌다.
그저 수전증이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날이 갈수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더 심해지고 있구나를 알았다.
나는 계속 나를 방치했다.
방 안에 쌓인 택배박스들처럼.
치워야 하는 걸 알면서도,
손을 뻗는 것조차 지칠 때가 많았다.
그게 편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일이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 되지 않는 상태.
그게 딱 나였다.
날이 흐리던 저녁, 한강의 불빛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들.
불안이는 그때 더 날뛰었고,
나는 못 들은 척하며 살기 바빴다.
계속 외면하고 살았던 거다.
그래도 이제는 내 안의 불안과 친구가 되어보려 한다.
그 애와 대화를 해보며, 차츰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발작이 온다면, 이번엔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그래도 괜찮아. 나랑 함께 있잖아.”
혼자 해내야 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내 머리를 말려줄 사람의 손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