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도.
10월의 어느날.
뚜—두. 뚜—-두.
엄마와 평상 시 처럼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요즘 부쩍 우리의 전화가 잦아진다.
그 이유는 내가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고픈 일종의 신호이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엄마에게 오늘 무엇을 했냐고 물어봤다.
어디냐고. 차 안에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최근, 오빠가 거주를 옮기기 위해 엄마와 함께 모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생필품, 이불, 음식들까지 하나하나 손수 장만하고 짐을 싸는 것부터 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실 오빠는 자립을 늦게 한 편이라 오빠도 처음이었다.
나는 몇 번의 기숙사짐과 자취부터 시작하면 부모님이 매번 챙겨주었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도 나이가 들어 체력도 떨어지고 마음도 조금 약해지지 않은 가 싶다.
집에 입주하는 과정에서 오빠와 엄마 사이에 작은 트러블이 생겨 엄마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
엄마와 오빠는 광주로 다시 내려가는 동안 말 한마디를 섞지 않게 되며
엄마의 마음에 상처가 난 것.
나와 통화하다 오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다 눈물을 훔쳤다.
처음 듣고, 처음 느껴 본 엄마의 눈물이었다.
눈물에 목에 매여 지난 날의 서러움도 다 밀려온 것이다.
그녀의 눈물에,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부모님의 힘든 상황, 힘든 모습, 야윈 모습도 처음이라
여차여차 그녀를 달래고, 그녀도 나를 달랬다. 조만간 나도 일들을 정리 후 광주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봬자는 약속을 했다.
최근 지난 달 내가 토로 한 것들까지도 미안함에,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당연히 엄마를 힘들게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통화를 마친 후 나는 한 시간 내내 울음을 쏟아냈다.
엄마는 자식 중 내가 그나마 의지가 될 텐데, 생각해보니 내가 지지대가 된 적이 있을까 싶다.
며칠사이에 다행히 엄마의 속상함은 많이 사그라지며 오빠와 화해를 했다고 한다.
철부지 없었던 자식들의 어린시절과 부모의 젊은 시절에 우리는 이보다 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흐르고, 우리도 나이를 먹고, 부모님도 나이를 먹는다.
그만큼 예전의 마찰의 횟수가 덜했을 지 몰라도, 되려 상처의 깊이가 크다.
그녀가 기쁠 떄만 눈물이 흐르면 좋겠다.
앞으로 생길 그녀의 슬픔과 속상함, 아픔, 힘듦 또한 내가 짊어지고 흡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