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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운 Oct 02. 2022

사람 간의 사실

적극적으로 자기연민을 수용한다. 나의 파열음은 어디까지나 마음 주변에서 울렸고 사람 간의 명확한 사실이 너무도 눈부셨다. 투고할 시를 모아 가까운 드림디포를 들러 인쇄했고 A4용지 90장 정도의 분량이 생각보다 두께가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기로 해서 같이 움직였기에 우체국도 함께 들러 50편의 시를 꾹 눌러 담아 투고를 진행했다. 원고를 본 그 사람의 얼굴이 어쩐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응원의 표정이었는지 시큰둥한 표정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깊고 투명한 눈동자였던 건 확실했다. 8월 말 간만에 날씨가 화사한 날이었다. 유독 비가 많이 왔던 이번 여름이던 터라 화창한 날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우체국에 갔다가 내가 자주 가는 라멘집에 들러 라멘을 먹었다. 일 가기 전에 자주 허기를 달래러 오는 곳이었는데 항상 주문하고 5분 만에 먹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그날은 조금이나마 천천히 먹으려 애를 썼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자주 같이 가는 카페에 와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그 사람의 모든 표정과 모든 결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못생긴 표정을 지어도 마음이 시리도록 사랑스럽고 유난히 짧은 새끼손가락도. 그 손가락 주인이 적어내는 글씨체도. 은은히 빛이 났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유독 별이 잘 보인다. 별 하나하나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구절이 되어 나에게 말을 건다. 우리의 커다란 사실이 내게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작은 별 같다. 나는 간직되고 싶고 간직하고 싶다. 꾹 눌러 담아 보낸 시처럼 보내고 싶지 않다. 시는 발견될 때 다시 숨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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