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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운 Oct 04. 2022

시계

그 사람은 현관 옆에 아날로그시계를 걸어 놓았다.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보는 게 익숙해진 터라 아날로그시계를 보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 사람이 걸어 놓은 시계가 이렇게 잘 보이고 편리할 줄은 몰랐다. 그 시계 밑에는 달력이 하나 있는데 달력에 무언가를 기재하거나 달력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이 달력은 9월에 멈춰있겠다. 감정이 일상을 지배하니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을 거 같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모든 걸 가능케 만든 건 어쩌면 진실한 사랑이었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애를 마치고 전처럼 행동하는 기능이 정지되었다. 네이버에 이별 후 가슴 통증을 쳐보는 것도 유튜브에 이별에 관해 쳐보는 것도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버티기 위해 하던 잔물결이었다. 하늘을 보면서 내일은 또 다른 근사한 하늘이 있을 것만 같다. 긍정적으로 버티기 위한 장치를 몇 개 만들어 놓았다. 사색을 즐겨하던 편이었다. 하지만 그 사색을 우리의 공간에 들고 오고 싶지 않았다. 우울해질 게 뻔했으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니 다시 생각을 무한히 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장치다. 글로 해소를 하고 또 다른 글로 고양되고 또 다른 글로 마음을 북적이게 했다. 이것 또한 장치다. 노래를 잘 골라야 한다. 사랑 노래를 틀어도 가벼운 사랑 노래면 내 사랑이 가벼워진 것 같아 가볍지 않은 사랑 노래를 골라 틀었다. 친구들이 노래를 추천해주기도 했고 예전에 자주 듣던 노래도 듣고 있다. 문득 책을 정리하다 사이에 끼워진 쪽지를 보았다. 오늘도 힘내라는 그 사람의 글씨에 무너지고 말았다. 몇 개월 전에 쓴 쪽지가 분명했는데 나는 이제야 그 쪽지를 확인했다. 항상 먼저 출근하던 그 사람이기에 나의 자는 모습을 보고 사랑스럽게 봐주었던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누워서 자던 모습을 무해하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겨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를 좋게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음도 기억도 저 아날로그시계처럼 배터리가 다 되면 언젠가 멈추겠지만, 우리가 데일만큼 사랑했던 것. 그리고 그 따뜻함으로 편안해졌음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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