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한 사랑은 결국 사라진다. 희망도 절망도 쌓여야 힘이 실린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 어귀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인연도 갈린다. 운명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도 바뀔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자기 신념도 태워버리는 사랑을 만난다면 온종일 불 앞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혼자가 되더라도 잔불이 남는다.
‘혼자여도 괜찮다.’ 다정한 글과 사람을 만나면 늘 떠오르는 생각이다. 혼자서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기에 어쩌면 다소 무신경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부족한 균형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기에 나의 품에 담긴 불안을 심장 위로 밀어내며 걷어내기로 한다.
아픈 일은 너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아픈 것과 사람을 잃어 아픈 건 극명한 차이가 있는 아픔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시원했고 따뜻했던 곁. 사계절 내내 풍성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핀잔도 가끔 울리는 광고 알람도 무해하게 느껴진다. 신난 아이들도 모두 가을날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시야를 두드리는 햇살에 손차양을 만든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절이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