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2부>

#첫사랑은 원래 다 그런 법

by 승혁

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1부>와 이어집니다.


- 2부 -

뒤에 멈춰있는 차에서 경적이 세 번쯤 빵-하고 울렸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 같다. 떡 벌어진 입은 멍하니 다물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위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 리 없는 오른쪽 발은 무의식적으로 엑셀레이터를 꾹 밟았다. 그냥 달렸다. 첫 출근의 느낌은커녕 영화 <트루먼쇼>의 짐 캐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도대체 내가 뭘 봤던 거지?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지현수입니다.”


예상대로 출근 첫날은 완전히 꼬여버렸다. 우선 톨게이트에서 봤던 잠깐의 이상한 잔상으로 인해 넋이 나간 상태로 첫인사를 했고, 결국 장장 4시간짜리 신입사원 교육에서 기억나는 거라곤 복지 포인트를 쓰는 방법뿐이었다. 분명히 사내 메신저 사용법에 대해서 배웠을 텐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런 걸 상사에게 첫날부터 물어보긴 조금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까지 했었다. 분명히 ‘사내’ 메신저인데도 말이다. 점심이 되기 전부터 일부 상사들은 ‘벌써 군기가 빠졌네’라는 속마음이 보일 정도로 나에게 쓴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입사 동기들도 점심 식사시간 내내 ‘어디 아프세요?’, ‘긴장을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라는 식의 잘못된 맥을 짚고 자기 멋대로 처방을 내려버렸다. 나의 병명은 ‘첫 출근 극도의 긴장으로 인한 급과민성대장증후군’이었다. 오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왜 지수가 톨게이트에 있었지? 도대체 왜?

“과제를 드릴 거예요.”


오후에도 어김없이 신입사원을 한 데 불러 모았다. 오전과 같이 지루한 교육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예상 밖의 행보가 이어졌다. 팀 과제를 받은 것이다. 사실 과제라 말할 것도 없는 게, 우리 회사를 이해하고 입사 동기들과의 친목 도모를 위해 4인 1조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에 딸린 많은 옵션(option)들이 있었다. 팀은 각자 다른 근무지의 사원들로 구성하되 회사를 위해 부서끼리 협업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든지, 비전, 목표 등을 포함해 발표하는 것이었다. ‘최종 합격까지 한 마당에 또 무슨 과제를 하란 말이냐’하는 식의 웅성거림이 조금 들리긴 했으나, 언제나 그랬듯 대한민국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수긍하고 움직이는 것이 곧 승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30년 평생을 나무늘보처럼 살아오다 잠깐 여우의 탈을 쓰고 육식 강자의 세계에 들어온 초식 동물인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적응을 하긴 어려웠다. 결국, 여우의 탈인 것이 들통나 어떤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다. 점심 식사시간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어떤 사원은 ‘옳다구나!’하고 나를 팀으로 데려왔고 발표할 때 순전 ‘흥미 유발’용으로 나를 갖고 놀았다. 오늘 너무 긴장한 나머지 먹었던 점심 메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둥, 혹시 내 이름은 알고 있냐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까르르 웃던 얼굴들이 똑똑히 기억난다. 소설의 발전과정 5단계 중 ‘사건의 발단’ 역을 맡은 나는 제 역할이 끝나자마자 처참히 버려졌고 결국 ‘위기와 절정’ 단계에 접어들며 그 존재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팀은 일등을 해 친목 도모 회식비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사라져 어느새 퇴근할 시간이 되었단다. 그때쯤 손목에 차고 있던 가죽 시계를 처음으로 내려다봤고 시간이 벌써 오후 6시가 임박했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하루에서 가장 뚜렷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1분 1초라도 서둘러 퇴근하고 싶어 그렇게 행동이 민첩했지만, 오늘의 나는 목적이 달랐다. 다시 그곳에 가봐야 했다.




오늘 함께했던 팀원들의 연락에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퇴근하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을 달려 톨게이트에 다다랐다.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맞은편 수납원 창구를 보았다. 겨울인지라 오후 6시는 깜깜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지수는 그곳에 없었다.


“그래, 내가 잘못 본 거야. 우연히 닮은 사람이었겠지.”


사실 이렇게 혼잣말을 하긴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내일 이 장소, 이 시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나를 깜빡깜빡 비출 때마다 마음도 같이 깜빡깜빡 바뀌었다. 다시 보고 싶기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왜냐고?

지수는 확실히 내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원래 그런 법이다.

보고 싶기도, 보고 싶지 않기도.



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2부> 끝.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일러스트 작가 ‘집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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