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1부>

#여러분의 첫사랑은 누구였나요?

by 승혁

※ '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프롤로그>'와 이어집니다.


- 1부-






당시에 그 친구는 참 인상적이었다. 단발이었지만 정갈하게 빗은 머리에 항상 검은색 고무줄 머리끈을 하고 다녔다. 참, 웃을 때 보조개와 함께 보이는 덧니가 참 매력적이었다. 교복도 당시 유행하던,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줄인 것이 아닌, 어쩌면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풍기는 분위기에서는 올곧은 강단이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을 마주할 때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눈꼬리는 차분히 내려앉아 웃을 때 자연스럽게 반달 모양을 그렸고, 그때 광대뼈가 발그레 올라왔다.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에 섬세한 배려와 따뜻한 여유로움이 묻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수 걔, 집 부도났대. 지금 남편이랑 이혼도 했다나?”


순간 안주를 집으려던 손이 멈칫했다. 당시 그 친구는 소위 ‘부잣집 딸’로 유명했었다. 정확히 아는 건 없었지만, 흘려듣기로는 아버지가 가진 땅이 수천 평이었고 어머니는 당시 동네 슈퍼를 운영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슈퍼라기보다는 마트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 마트 같은 슈퍼에 들를 때면 꼬박꼬박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또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던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하면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후원을 해줄 수도, 직접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누굴 챙길 수도 있는 여력도 안 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을 뒤로한 채 술집을 나왔다. 2차로 가자는 친구의 권유에 자욱한 담배 연기를 친구 얼굴에 퉤 뱉으며 대신 의사를 전했다.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쯤 다음에 다시 보자는, (정말 그럴진 모르겠지만), 인사를 나누며 친구와 헤어졌다. 아, 시원한 탄산음료가 당기는 것을 보니 술을 꽤 많이 마셨나 보다. 마침 담배도 다 떨어진 터라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이거랑 담배 하나 주세요.”

“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무리 술기운이라지만 흠칫 놀랐다. 아니, 그 순간 술에서 깼는지도 모르겠다. 업무상 상냥히 인사를 해야만 하는, 나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지수 같을 줄이야. 속으로 ‘에잇, 그 새끼. 괜한 얘기를 꺼내 가지고’라고 말하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 편의점을 나왔다. 추위가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1월 말, 담배를 입에 물려다 피우려던 그 손도 추울 것 같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냥 가기로 했다. 담배 연기 대신 뜨거운 입김이 내 뒤로 긴 행렬을 이어나갔다. 어쩌면 한숨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녀올게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젯밤 다려놓은 정장을 입었다. 넥타이는 남색 계열로 준비했다. 너무 진중하지도, 또 너무 가벼워 보이지도 않는 색을 찾으려 엄마와 밤새 고민했었다. 첫 인상이 항상 중요하니까.


한편, 추운 겨울날 집 밖에 세워둔 차에 타는 일은 어쩌면 하루 중에서 가장 고되고 견디기 힘든 일이다. 2000년대 중반에 계약한 낡은 경차라 시트에 열선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여름철엔 가끔 냉방도 안 되는 차이기도 하고 약간의 담배냄새도 배어있었다. 주위 친구들이 첫 월급을 타면 차부터 당장 갈아엎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다.


그래도 첫날의 묘한 긴장감 때문일까. ‘생각보다 춥진 않은데’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영동고속도로에 올랐다. 첫 출근은 곧 회사 생활 전체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일인 만큼 30여 분 정도 일찍 출발했고 고속도로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또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부지런함에 뿌듯함을 한껏 만끽했다. 블루투스 음악은 연결하지 않고 대신 직장인처럼 보일 수 있게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아침의 교통상황을 친절히 정리해주고 있었고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로 사연자의 신청곡이 띄워졌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대여서 그런가 ‘럼블피쉬’의 ‘버터플라이’가 흘러나왔다. 온갖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뮤직비디오 주인공처럼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너무 따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아침 햇살이 팍팍한 얼굴을 어루만져주니 하루가 잘 풀릴 것만 같았다.


약 1시간 남짓 달려 여주시에 다다랐다. 톨게이트에서 내리면 아마도 십 분 안으로 회사에 도착하겠지. 순간, 갑자기 마음이 떨리기 시작하고 조급해졌다.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오른쪽 다리도 무의식적으로 떨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구닥다리 차에 하이패스 단말기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떨리는 마음은 톨게이트를 슝-하고 지나치라고 재촉하고 있었지만, 결국 서서히 속도를 줄여 일반 차로에 멈췄다. 급하게 창문을 반쯤 내리고 수납원과 마주할 틈도 없이 고속도로 통행권을 건넸다. 통행권을 주면서 나의 시선은 차량 앞 LED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마침 차 안에 잔돈이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수납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다소 적극적인 내 마음과 다르게 수납원의 행동은 멈칫멈칫, 줄까 말까 식의 소극적 태도였기 때문이다. 마치 연애할 때 밀당에 걸려든 순한 양 같은, 약간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고, 마치 선생님께 반항하는 사춘기 학생처럼 그 위를 매섭게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렇게 뜨거웠던 나의 부동액은

차가운 워셔액처럼 빠르게 식어버렸다.



“너... 맞지? 현수. 나 모르겠어? 지수.”




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프롤로그> 끝.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일러스트 작가 '집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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