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인턴의 단편 소설 도전기
※ 실제 있었던 이야기 소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단편 소설입니다.
※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 등은 실제와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프롤로그 -
딸-깍.
인터넷 게임을 할 때 한 번의 클릭(click)은 세상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부하지만, 이번만큼은 길고, 세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눌렀다. 어쩌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고 질끈 감았던 실눈을 서서히 떴다. 그 잠깐의 찰나에 지난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 합격이다.”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읊조리는 말. 합격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진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5초 뒤 가팔라지는 숨소리와 빨라지는 심장 박동, 그리고 건조한 손에서 뜨거운 땀이 솟구치는 경험을 했다. 마우스와 손바닥 사이에는 뜨거운 성에가 껴 더 이상 서로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때쯤이었나. 내 옆자리의 사람은 본인의 가상현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 소리에 잠깐 ‘아, 여기 PC방이지’라며 정신이 들었다. 그래, 드디어 취업 문턱을 넘은 거야.
일부러 동네 인근 PC방까지 찾아온 나였다. 올해로 나이 서른 살. 그동안 나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생각하지만, 취업 문턱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한때는 ‘도대체 누가 합격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무기력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런 기간을 겪으면서 눈을 많이 낮추었고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철학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취업 준비를 한창 하던 때에는 만약 직장 소재지가 서울을 벗어난다면, 길고 긴 인생 마라톤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하나둘 먹어갈수록 자존심이라면 자존심, 그리고 세상과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른 살이면 아주 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수도권이라면 수도권인 곳에 직장을 갖게 되었다.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여주시 시청으로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경기도 여주가 정확히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인지도 모른 채 지원서를 넣었다. 단지 ‘경기도’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군’, ‘읍’도 아닌 ‘시’이기 때문에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께서 아들 자랑을 할 때 부끄럽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인구수 12만 명 남짓한, 걸핏하면 ‘군’으로 내려앉을 수도 있는, '군'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시'에 떨어질 것이라는 운명을 차마 알지 못했다.
출근을 한 달여 정도 남겨두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영역, 거주 형태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나이지만, 직장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것이다. 후방 카메라나 블랙박스, 하이패스 단말기도 없는 낡은 경차지만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서울 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보통 한 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이 정도면 꽤 도전해볼 만한 결투신청이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그동안 소홀했던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끌어올리는 데 투자했다. 첫 월급을 탄 것도 아닌데 한 달 월급 치 술값 영수증이 주머니에 가득했다.
대게 그동안의 술자리에선 시시콜콜한 안부와 가식적인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던 기억만 남았다. 그런데 한 번은 오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 얘기라고는 20년도 더 된 케케묵은 지난 이야기뿐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보다 아련한 감정이 밀려왔던 것으로 보아서 꽤나 이런 추억 회상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이 친구 녀석이 느닷없이 첫사랑 얘기를 꺼냈다.
“야, 너 그때 걔 좋아했잖아. 숫기도 없던 놈이.”
“응? 나 이제 이름도 기억 안 나. 누구였지? 지수였나?”
막상 말하고 보니, 점점 더 선명해지는 얼굴. 그중 웃을 때마다 유난히 돋보였던 보조개까지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손사래 치며 아니라고는 말했지만 지난 시절 마음속 반짝였던 한구석을 들켜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사람 인연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널 찾아가기 좋은 핑계가 생긴다는 사실을.
내 첫사랑은 톨게이트 수납원 <프롤로그> 끝.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일러스트 작가 '집시'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