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약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강해진다.
갱년기는 남자가 더 무섭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문의가 아니기에 정확하게 갱년기가 왔다고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최근 들어 아버지도 퍽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런 말을 하니 마치 아픈 병동을 순회하는 전문의가 된 것 같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시선에서 보는 것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간단히 아버지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누구보다도 강한 분이시다. 실제 풍기는 모습과 분위기에서도 번뜩 알 수 있지만 살아온 환경이 결코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분이다. 살아오시면서 여러 풍파를 맞다 보니 지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에서나 볼 법한 굵은 주먹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주먹왕 랄프는 아버지처럼 케케묵은 굳은살은 없어 보인다. 당최 굵은 뼈라고 말씀하시지만 떡 벌어진 골격과 근육량은 평범한 남자를 능가해 이 남자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30대가 넘을 때까지 아버지를 힘으로 이길 자신이 없다.
신체적 능력만큼 정신적인 부분도 굉장히 강하시다. 어쩌면 더 능가할지도 모른다. 삶의 철학은 ‘깡’. 남자는 자고로 ‘깡’이 있어야 하며, ‘있어도 깡, 없어도 깡’으로 살아간다면 절대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쥐뿔 가진 게 없어도 자신감 하나로 버텨왔다고 말씀하시며, 덕분에 얼굴이 잘생긴 것도, 키가 큰 것도 아니지만 남다른 비전(?)을 제시하여 꽤 많은 여인의 눈물샘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니, 전해진다. (사료가 적어 확인이 어렵다.)
누구보다도 강한, 그런 아버지가 요즘 들어 부쩍 약해지셨다. 이것은 늙음의 풍파가 아닌 조금 다른 느낌의 무엇이었다. 우선, 활동 범위가 줄어들었다. 매주 운동하는 것을 낙으로 버텨온 아버지는 그렇게 자주 나가시던 족구 동호회를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무릎이 아프시다는 이유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뭔가 내려놓는 듯한 느낌을 꽤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사 노동의 비율을 높여가셨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각종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며 이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셨다. 덕분에 잔소리는 ‘묻고 더블로’ 갔다.
이렇게 아버지가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만 했지 별다른 추후 행동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평범한 어느 날, 사건은 터지고야 말았다. 경과는 이랬다.
아버지: 아빠 오늘 회사 파업 때문에 일찍 퇴근한다! 와서 피자 먹을까?
아들 1, 2: 으악!!! 일찍 오신다고? 일찍 오시면 아빠 또 잔소리할 거잖아!!
아버지: 하하하. 그래, 그래...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저 우리 집 분위기에 맞게 반응을 한 것뿐이었고, 평소였다면 서로 티격태격하며 행복하게 지나갈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이, 참 갑자기 왜 그러지, 하하. 갑자기 기분이 이상하네.”
방 안에서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보이며 본인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계셨다. 마치 영화에서 전우가 나를 위해 대신 총알을 받아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의 공허함이 분명했다. 불끈했던 어깨는 어느새 축 내려앉아 있었고, 날갯짓을 하려는 아기새가 본인의 수명이 여기까지임을 알고 쓰러질 때의 눈을 하고 계셨다.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진심 어린 죄송함의 표시를 보이며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버지는 화가 나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이 우울한 감정의 근원에 대해서 차분히 말씀해주셨다.
1997년, 아버지와 어머니는 IMF를 맞았다. 그래 봤자 27, 28살. 어쩌면 IMF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사회 초년생. 그렇게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실직을 경험했다. 누구보다도 ‘깡’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회 앞에서 그는 한없이 작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 달 정도를 집에 계셨다고 한다. 처음엔 일도 안 하고 쉴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와의 마찰이 잦아졌고, ‘당신 오늘도 쉬어?’라는 말에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가장으로서 얼마나 많은 부담을 느꼈을까. 어린 두 아들과 아내, 그리고 이들을 품는 그 작은 집 하나를 위해서 달려오셨다. 그러나 사회 앞에서 갈대 마냥 픽 쓰러질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가치관은 처참히 짓밟혔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몇 달 지나지 않아 지인의 권유로 이곳저곳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의 가족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에게 직장은 ‘꿈’이자 ‘희망’이고,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 가족 중 어느 몰상식한 아들이 아버지가 꼭꼭 숨겨둔 마음의 장소를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나이는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해지며 점점 약해져 가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언제 돌아가실 거예요?’라고 말한 꼴이 되었다.
비단 갱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싯적 겪은 트라우마와 갱년기가 겹치다 보니 부쩍 말이 없어지셨고 계속 안으로만 파고 들어가셨다. 한동안 대화를 아꼈던 것 같다. 대화를 시도하면 왠지 아픔을 계속 건드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지금’ 갱년기가 찾아오신 것 같다. 물론 위에서 말했다시피 정확하게는 모른다. 앞으로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볼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이를 계기로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조금은 내 행실에 책임감을 느끼며 행동해야 한다는 것, 누구나 약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보듬고 가족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것.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게 사춘기를 겪었듯
부모님도 갱년기라는 것을 겪는다.
그리고 훗날 우리 또한 이 시기를 지나갈 것이다.
- <갱년기에서 살아남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