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보지 않은 아들의 하소연, 그리고 젊어봤던 엄마의 변화.
요즘 들어 잔소리가 부쩍 많아지셨다. 두 아들은 어느덧 20대 중반을 넘어서 각자의 길,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 분명히 10대 때보다 성숙해진 청년인데도 말이다. 물론 어머니, 아버지의 눈에서 우릴 바라보면 한없이 부족하고 여린 존재이겠지만 잔소리는 여전히 잔소리로 남았다.
갱년기는 어머니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갱년기라는 말과 이에 수반되는 증상들을 결코 믿지 않았던 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인체 과학엔 소질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호르몬이 바뀌어서 나와?’, ‘남자가 여자처럼 바뀐다고?’라는 식의 생각은 나에겐 ‘난센스’한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우리 앞에서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으셨다.
“갱년기라서 그런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요즘 따라 더욱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겠어. 생리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야. 얘들아, 혹시라도 엄마가 사소한 일로 불같이 화를 내더라도 이해해주렴.”
이 말을 듣고, 솔직히 ‘아휴, 이제 더 힘들어지겠네.’라는 얄팍한 생각을 했었다. 평소 여자 대장부 같은 우리 어머니는 성격만큼이나 본인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가치관이 틀리진 않았다는 일념을 가지고 그 누구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살아오셨다. 이런 어머님이 갱년기와 맞물린다고 생각하니, (갱년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실제로, 근 1년 동안 정말 많이 다투었다. 심하게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왜 감정을 이렇게도 제어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들 1: “난 그래도 맛있는 거 잘 사주시는 친할머니가 제일 좋아”
어머니: “그래. 그 피 어디 안 가지. 너희 아빠도 똑같고. 난 참 불행한 엄마야. 세 남자가 아주 똘똘 뭉쳐서 잘 살아보지 그래!”
아들 2: "아니, 그냥 기분을 말한 거잖아. 엄마."
어머니: "가르치려고 들지 마. 네가 뭘 알아!"
한낱 기분을 표현하는 말도 어머니에겐 상처가 되는 말이었고, 심기를 건드리는 따가운 바늘과도 같았다. 그래 봤자 인생을 20여 년, 어머니보다 덜 살아 본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자 영역이었다. 상대방을 비꼬거나 화를 내는 태도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그런 말에 진심으로 우울해하고 슬퍼하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다분했다.
그야말로 두 아들은 ‘아노미’ 상태였다. 그동안 딸처럼 상냥하게 어머니를 공감해드리진 못했었지만 남자치고 정말 수다스러운 나로서도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왜? 결국 싸움으로 번지고 마니까. 내 관점에서의 세심한 배려가 어머니께는 그녀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대장부 어머니는 그런 반역자인 나를 가만두지 않으셨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행히도, 요즘 들어 어머니는 꽤 많이 좋아지셨다. 가끔 나와 술잔을 기울이실 때, ‘그땐 왜 그렇게 짜증이 났지’ 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겐 꽤 신선하고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어머니의 갱년기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리고 존재한다면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다.
“호르몬의 힘은 위대하다!”
정말 처음이기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무지하게 당황스러웠던, 그런 기억으로 남았다.
마치 두 아들에겐 군대라는 그 무서운 느낌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입신병 기간과 똑같지 않았을까. 군대엔 분명히 들어온 게 맞는데, 정말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가만히 멀뚱멀뚱하게 앉아만 있었으니까. 정말 발만 잠깐 담그고 있는 ‘체험’이었으리라.
에이, 이 정도면 생각보다 견딜만했지 뭐. 시간이 약이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건
그 두 아들은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우리 집의 어른은 ‘두 명’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로 두 아들은 조금은 더 성숙해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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