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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혁 Aug 10. 2022

퇴근중담(談) EP4. 글을 쓰는 이유

퇴근하면서 끄적여보는 '쓸 때 있는(write)' 생각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적지 않은 횟수로 "시간 날 때 종종 글을 씁니다"라고 대답하는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직장 동료 분이 내게 "김매(김 매니저)는 취미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입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숟가락질을 멈추게 했다. 과연 나의 '취미'는 정말 '글쓰기'일까. 그래 봤자 한 달에 두 번 정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을 당당히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만의 취미'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주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예컨대 음악 듣기가 취미라는 한 친구는 수많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YG 아이돌 음악을 딱 잘라 말할 정도로 취향이 확고했다. 그의 음악관(音樂觀)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모든 주장이 납득되진 않더라도 비교적 '전문가'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꽤 많다. 파도 서핑이 취미라는 친구는 매해 여름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흡사 해적왕이 되어 바다를 누빈다. 주말마다 바늘땀처럼 올라오는 그의 SNS를 보고 있으면, 그 역시 취미를 '전문적'으로 즐기는 멋진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 비해 나는 터무니없이 '약한' 취미를 가져왔다. 최신 음악 트렌드를 타인보다 빠르게 따라가거나 특정 장르에 푹 빠질 정도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나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말할 수 있는 특이점은 1990년대 세기말 노래들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다. 운동도 축구, 농구 등 가릴 것 없이 두루 하는 편이지만 수준급은 아니다. 더욱이 파도 서핑은 초등학생 시절 보이 스카우트(Boy Scouts) 수련회 때나 한 번 경험해 본 정도다. 사나이 가슴을 끓게 만든다는 전자기기나 자동차 쪽으로 지식이 빠삭한가? 그것도 아닌 듯하다. 이처럼 혹 누군가가 '나의 취미'를 물으면, 한없이 작아지곤 했다.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즐기기 위한 일'이라고 쓰여있지만, 우리는 마음 한편에 전문적인 취미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의 비교적 '전문적인' 실력이나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인 것이다.


의자를 일렬로 맞춰놓고 싶다.

취미는 취미일 수 없을까. 남들보다 실력은 조금 미흡해도 그 행위를 할 때만큼은 온전한 나를 만나기도 하고, 어떠한 심적 제약 없이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취미 말이다. 물론, 방금 말처럼 온전히 취미를 즐기고 있는 사람도 많을 터다. 하지만, 위 언급한 어떠한 강박들로 '취밍 아웃'을 꺼려하는 이들도 못지않게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비가 들이붓는 퇴근길, 작은 핸드폰 화면을 빌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취미가 글쓰기인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아주 가끔씩,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애써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말이다!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강박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이다.


이미 말했듯,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강박에 부딪힌다. 작게는 책상 모서리에 앉으면 복이 달아난다는 미속을 지키는 일이나 지하철에서 가장 바깥 자리부터 채워 앉는 일 등 '굳이 하지 않아도 문제없지만, 애써 하고 마는' 그런 일련의 피곤함을 야기하는 행위 말이다.


이런 수많은 강박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내 몸은 본능적으로 해방을 꿈꾸게 된다. 그 해방감은 다양한 방법으로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취미로써 행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취미는 전문적인 실력 없이도 즐길 수 있는 행위나, 남는 시간에 하는 잉여 행위가 아닐지 모른다. 누군가의 해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룩한 순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일상 속, 머릿속을 지끈지끈 채우는 갖은 강박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바로 그 취미!


보잘것없어 보이는 취미는 이 세상에 없다. 그 자체만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나는 오밀조밀한 글자 위에서 '취미'를 즐겼다. 나는 오늘도 '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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