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에 도전하다
꿀 같은 광복절 연휴가 끝났다. 사실 이번 3일 연휴에 연차 두 개를 앞으로 붙여 총 5일가량을 쉬는 바람에 더욱 그 끝자락이 아쉽기만 하다. 이번 연휴 때는 특별히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더 어울릴지도. 숙박비 등 휴가지 물가가 3배는 가뿐히 뛰는 극성수기였을 뿐더러 전국, 특히 서울·수도권에 이례적인 물폭탄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웃기게도, 현재 다니고 있는 우리 회사의 건물이 '노아의 방벽'으로 대대적으로 언론을 탔다. 들어보니, 강남대로가 침수된 다음날 각종 방송사에서 우리 건물과 차수막을 취재하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난 언론홍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에 근무하고 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5일 연휴 동안 칩거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됐다. 10번 이상의 MBTI 검사가 모두 ENFJ로 나오는 일관적인 (그리고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집돌이 감성도 네 스푼 이상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집콕 연휴가 크게 지루하진 않았다. 남들이 영화 <비상선언>, <헌트>, 끝물인 <탑건>을 볼 때 취향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고 애니메이션 <슈퍼-펫>을 선택하며 '혼영'을 즐겼고, 광복절 전날인 동생 생일을 맞이해 가족과 근사한 곳으로 외식도 다녀왔다. 때마침 영국 프리미어리그(EPL)도 개막해, 토요일엔 늦은 8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해외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인 지금, 일상 복귀를 목전에 두고 작은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평소 어떤 활동이 됐든 생산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생활신조를 연휴나 휴일에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지난 광고 카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만큼 평일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쉴 땐 누구보다 낭비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쉬느니만 못한 쉬는 시간은 내게 오히려 무력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휴 때 신기한 점을 발견했는데, 영화가 됐든 수면이 됐든 그 다채로운 나만의 휴식기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 특히 인스타그램을 맹목적으로 붙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있는 동안 친구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방대한 양의 콘텐츠 홍수 속에서 '그저' 어푸어푸 소비만 하고 있었다.
말만 들으면 "많고 재밌는 콘텐츠들을 접하는 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인스타그램 속 콘텐츠들은 몇 가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 이혼했어요>, <에덴> 등 각종 TV 프로그램의 자극적이고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만 짜깁기한 콘텐츠를 자주 접한다. 물론, 예시로 든 프로그램들이 백해무익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 영상을 보지 않은 이용자들이 아무 맥락 없이 자극적인 부분만 편집된 영상을 접하면 최소한 '오해'라는 것이 발생할 수도 있을뿐더러, 해당 게시글의 댓글 창을 들여다보면 온갖 어지럽고 원색적인 비난이 즐비하다. 이혼 과정을 통해 초기의 마음가짐을 되찾자는 본래 기획의도와는 달리, 어느 이에게는 순식간에 비혼 장려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빈부 격차를 조장하는 듯한 '어느 부자의 자랑 글'이나 약간 징그러운 광경을 통해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게 만드는 숏(short) 영상 등 어지러운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이 글을 당신도 이럴 확률이 높지만), 이러한 콘텐츠들을 무의식적이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인스타그램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어느 날은 심하게 두통이 온 듯 머리가 하루 종일 지끈지끈하다. 이런 생각을 비단 이번 연휴에만 한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조금 멀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친구나 사회로부터 서서히 도태될까 봐 그렇다.
우리 세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가깝지만 먼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안부를 직접 묻거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주로 SNS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다. 아니, 때론 자신의 소식을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내걸고 일방적으로 '나 이렇게 살아요'하며 통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좋아요, 슬퍼요 등의 한정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나 반응을 몇 가지 옵션에서 골라 전달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3년 동안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않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인간관계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하트'는 눌러왔기에 내적 친밀감은 남아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오죽하면 인간관계에 점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구들의 소식을 빠르게 접하지 못한다는 점에선 아직도 머뭇거리게 되지만, 조금 더 건강한 나를 위해서 천천히 '디지털 디톡스'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그 시작이 인스타그램이 될 것 같고, 시작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핸드폰 속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우고 한 달을 살아볼 예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카카오톡 메신저까지는 지울 수 없겠지만, 그 외에 없어도 될 어플들을 조금씩 없애거나 사용을 줄여나가 볼 생각이다.
또한, 자칫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텍스트(문자 등)를 줄이고 직접 연락해보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SNS로만 안부를 묻던 친구에게 다짜고짜 연락하는 일은 어찌 보면 죽기보다 힘든 일일 테지만, 한 번쯤은 용기내 볼 예정이다. 핸드폰 화면에 무질서하게 놓여있던 어플들도 묶어서 어디론가 보내 놓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주는 아니겠지만, 디지털 디톡스를 진행하면서 작게라도 변화한 점이 있다면 종종 글로 남길 생각이기에 프롤로그 느낌으로 이 글을 적어 놓는다. 내가 변화한 점을 서술하는 것도 좋지만, 반대로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없는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이 도전에 관심이 없을 걸 알기에 부담 없이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인스타그램 어플은 삭제된 상태다.
나의 디지털 해방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