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는 떨구고, 술잔은 높이 들고

by 박홍시

저는 최근에 계속 친구들과의 교류를 끊어왔습니다.

제가 스스로 너무 위태롭다고 느꼈습니다.

심각해져 가는 정신병과, 추해져 가는 겉모습에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출근해서 일한 뒤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곤 자기 전에 울었습니다.


그러던 저번 주말, 정말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교정을 한 지 1년 반이 되었는데, 제가 교정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서운할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거의 1~2년을 잠수를 탔으니까요.


이번 약속은 제가 몇 번을 취소했던 약속이었습니다.

약속을 잡고, 다가오면 도망치기를 반복했죠.

거의 몇 년 가까이 그렇게 도망만 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저를 불러주었습니다.

미안함에 친구들 얼굴 보기가 더 꺼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엔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비록 내 모습이 추할지언정, 그것 또한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혹은 제가 인생을 잘 살았다는 증거이겠지요.

이렇게 아니꼽게 구는데도 계속 어울려주다니.

꾸역꾸역 나간 약속은 의외로 즐거웠습니다.

한창 대학교를 즐겁게 다니던 때를 추억하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잔은 높이 들고 고개는 바닥으로 떨구었습니다.

다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졌냐고 물었습니다.


한번 이야기의 물꼬를 텄더니 쏟아지듯 흘러내렸습니다.

요 몇 년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제가 이때까지 본 친구들 모습 중에 가장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말하기만 해도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게 어떤 것 느낌인지 얼추 느껴졌습니다.


그리곤 요 몇 년 중 가장 크게, 많이 웃으면서 놀았습니다.

이렇게 정신줄 놓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다음날 올라간 체중계에서 그 행복의 무게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친구들은 여전히 제 곁을 지켜주었고, 제가 떠나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스스로의 자학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혼자인 인간은 슬프고 외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일상이 돌아갔음에도 친구들이 남긴 여운은 제 코끝에 남아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 친구들의 이름을 발음할 수 없을 때까지 잘 지내겠노라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던가요.

어떤 약과 상담보다 크나큰 치유를 받은 주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입을 닫았지만, 마음은 결국 친구들 앞에서 열리고 말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직은 사람 곁이 따뜻합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0화나는 여유를 조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