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에 친 건 소금이 아니었다

간지러웠던 건 코가 아니라 양심이었다.

by 박홍시

중복에 벌어진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삼계탕 집이 있어요.

굉장히 유명한 한식 셰프님이 만드신 프랜차이즈인데, 제가 먹어본 삼계탕 중에 최고입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요.

그냥 삼계탕이 아니라 누룽지삼계탕인 게 구수한 향이 일품입니다.


하여간 초복은 놓쳐서 아쉬운 대로 중복에 삼계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복날엔 사람이 붐빌게 뻔하니, 아침을 거르고 이른 점심으로 먹으려 했지요.

11시 오픈런을 달렸는데 이미 사람이 가득 들어차 삼계탕이 나오는데 20분이나 걸렸습니다.

평소에는 5분 조금 넘으면 뜨끈한 삼계탕이 저에게 찾아왔는데 오늘은 유달리 느렸습니다.


최근에 대통령께서 전 국민에게 선물을 뿌렸죠?

그것도 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반찬을 가져다주시는 직원분께 조용히 여쭸습니다.

"여기 민생 그거... 어쩌고 쿠폰 되나요?"

"아, 당연히 되죠."

너무나도 바빴던 직원분은 반찬을 뿌리듯이 놔두시고, 대답을 흘리시고 쏜살 같이 사라지셨습니다.

셀프 바는 어디 있는지, 음식은 언제 나오는지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었으나, 너무 다급해 보이는 주방 상황에 그려려니 했습니다.


어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보니(오이고추가 어째서 매운지 대한 토론을 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고, 녹두 삼계탕과 누룽지 삼계탕이 나왔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뜨끈하고 깊은 국물에선 구수한 누룽지향이 섞여있었고, 닭은 완전히 묽어져 혀로 비비적거리기만 해도 뼈와 살이 분리되었습니다. 깍두기도 못 참겠더라고요. 아삭하고 매콤 달콤한 게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국물을 한 움큼 머금고 틈틈이 숨은 밥알들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요즘 천천히 먹기를 의식적으로 연습 중입니다.

너무 급하게 먹어서 살도 잘 찌고 과식이 빈번해서입니다.

저는 급하게 먹는다는 지표로 콧물이 나는데요(?).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저는 급하게 먹으면 그게 뭐든 콧물이 줄줄 납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냉면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줄줄 납니다(웃음).

오늘도 맛에 취해 정신 차리니 콧물이 맺히기 시작해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일단 한숨 돌리고 꼭꼭 씹어 넘긴 다음 다시 먹으려는 계획이었죠.

어느새 주변은 사람으로 붐볐습니다.

여기가 닭 파는 곳인지 사람 파는 곳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어머니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사방이 시끄러워졌고, 빈 식탁은 전혀 없었으며 복도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미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콧물에 주의하며 천천히 삼계탕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계산대로 갔지만 종업원은 없고, 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요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텀을 가지고 벨을 누르는 것뿐이었어요.

5번쯤 눌렀을 때 종업원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오셨습니다.


저는 지갑도 안 들고 왔고, 어머니가 계산하라며 휴대폰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차를 빼러 가셨습니다.

저희 집 사람들은 민생지원금을 카카오페이로 받았는데요, 종업원 분이 바코드를 내밀었더니 인상을 팍 쓰시는 겁니다.

"이거 안됩니다. 할 줄 몰라요." 당황스러웠습니다.

분명히 민생지원금 사용가능 업체라는 스티커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습니다.

"네?" 제가 되물었습니다.

"이거 바코드로는 계산 못해요."

다짜고짜 안된다는 말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침착하게 대응하려 애썼습니다.

이미 제 뒤에는 계산줄이 길게 늘어서고 있었고,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까지 합쳐져 마치 락 페스티벌 같았습니다.

사람의 쓰나미에 제 자리를 겨우 지키며 "그럼 어쩌죠?"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무튼 안된답니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안된다고 말만 반복하시고, 주방으로 떠나버리셨습니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민폐는 끼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줄에서 빠졌습니다.

날씨도 절 전혀 도울 생각이 없이 뜨거웠고 짜증이 확 났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민생지원금 된다고 확인까지 받고, 대문짝 만하게 스티커도 붙여놓고는 그냥 '안됩니다'라고 막무가내로 나오면 되나?'

그렇다고 가게를 뛰쳐나갈 순 없었습니다.

어머니께 계산 수단을 가져오라고 연락하려니 어머니 휴대폰은 저에게 있고, 주차장으로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저는 지갑도 없고, 계좌에 돈도 없는 알거지라 별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피어올랐어요.

'이거 그냥 확 가버릴까?'

'계산해 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저런 식으로 모르쇠로 나오는데 이건 튀어도 무죄 아냐? 성질나네 진짜.'

'사람도 많고 날도 더운데 그냥 안된다면서 날 덩그러니 세워놓는 게 맞아?'

온갖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양심이 간지러웠습니다.

가슴 한편이 계속 간질간질한 게 너무 거슬렸어요.

발걸음은 이미 가게 밖으로 나와버렸지만, 계속 '아씨!', '으이씨!'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저는 주차장을 찾아가 어머니께 카드라던가 다른 결제수단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저와 똑같이 짜증을 팍 내시며 가게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얼마 있다가 결제를 마치고 나온 어머니와 차에 타자 잠깐 정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가버리자고 말하려다가 양심에 찔려서 어머니 불렀어요."

"에휴, 나도 그냥 확 가버리려다가 계산해 줬다."


그제야 양심의 간지럼이 시원하게 해결됐습니다.

숨을 거칠게 쉬며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결국 양심에 따라서 돈을 냈더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요즘 들어 계속 드는 생각이지만, 삶의 준칙을 양심으로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스스로를 위해서입니다.

양심을 어기고, 간지러움을 계속 참으며 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자꾸만 간지러움을 참으며 살고, 양심의 가책을 꿀떡 넘기고 넘어가면 무의식적으로 자존감에 스크레치가 납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어요.


양심의 가책을 계속 지고 사는 사람은 내로남불에 고집불통이 되거나, 자존감이 바닥나 구질구질한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날 무더위 속에서의 해프닝은 단순히 삼계탕 한 그릇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는 종종 낡은 도덕 교과서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하죠.

하지만 정작 그런 순간들(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진짜 자신의 품격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저는 도망치지 않았고, 어머니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선택 하나가 속을 뻥 뚫리게 했고, 그날 삼계탕보다 더 깊은 ‘맛’을 남겼습니다.


양심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떳떳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존엄입니다.

그걸 어기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언젠가 자기 자신과도 어색해지고 맙니다.


삶은 크고 대단한 결정보다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나를 만들어 가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다짐합니다.


“양심이 간지러우면, 그냥 지켜라.”

그게 결국 나를 덜 불편하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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