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 ADHD가 있다. 정도가 꽤 심하다.
약을 하루에 세 번씩 먹는다.
36mg, 36mg, 18mg이었나... 아무튼 꽤나 고용량이라고 들었다.
성인 ADHD는 그냥 ADHD랑 별반 다를 빠가 없다.
다만 대부분은 성인이 되면서 전두엽이 성장하면 증상이 좋아지거나 없어지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렇기에 부주의하고 충동성과 과잉행동이 조절이 안된다.
그 외에 감정조절장애나 낮은 자존감 등을 동반한다.
내가 의사가 아니니 전문적인 지식은 잘 모르겠고, 필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증상은 따로 있다.
바로 '좋아함'의 상실이다.
무언가 글감이 떠오르면 나는 늘 검색부터 시작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좋아한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좋다'라는 감정이나 기분이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거슬리는 점은 '지속성'이다. ADHD와는 공존하기 힘든 단어다.
무엇도 꾸준히 하질 못한다.
강한 의지로 무언가 결심을 해도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지만 난 3일이라도 무언가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히려 작심삼일은 나에게 꿈과 같은 경지이다.
강렬한 감정이 폭발해서 무언가를 엄청 열심히 하다가도 금세 식어버려 쓰레기 보듯 취급한다.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면 '내가 뭐 하는 짓이지?' 하며 자괴감이 몰려온다.
대관절 무언가 좋아한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지는 병이다.
과연 정말 ADHD는 좋아함을 못 느끼는 병일까? 스스로의 경험을 되짚어 본다.
최근에는 조절하려 애쓰지만, 처음에 글쓰기에 빠졌을 땐 조절이 안됐다.
하루에 에세이를 4~5개씩 마구 토해다.
며칠 그렇게 글을 짜내면 그다음 며칠은 차갑게 식어 키보드에 손도 얹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다.
그땐 분명히 글 쓰는 게 너무 재미있고, 너무 좋아서 마구 써냈던 것이다.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건 분명히 '좋아함'이었다.
다만 신경전달물질의 흐름이 남들과는 다른 것이다.
남들과는 감정의 파고가 큰 것이다.
한 가지에 오래 머물기 어려운 뇌구조이지만, 좋아한다는 마음자체는 남들보다 몇 배는 강렬한 것이다.
몰입한 순간만큼은 그것이 세상에 없으면 죽을 것처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슬픈 것은 분명하다.
세상과 속도가 맞지 않는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주변에선 '너 그거 좋아한다며?'라고 반문하고 '꾸준히 해야지!', '왜 벌써 질려?'와 같은 질타를 받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뇌가 이미 흥미를 잃어버리면 때려죽여도 그것을 다시 할 수 없는 병이다.
세상의 느린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자극을 찾아 헤매는 내 뇌의 속도는 자괴감을 동반한다.
ADHD는 불안정하고, 이탈적이고, 변덕스러운 병이다.
그러나 템포가 다를 뿐 분명히 강렬한 좋아함을 가진 뇌일 뿐이다.
몰입할 땐 그 누구보다 깊게 빠져든다.
감정에 민감한 만큼, 진심이 많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해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책을 멈췄다.
‘꾸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좋아함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방식의 뇌를 가진 것뿐이라고.
이것은 그냥 다른 방식의 삶일 뿐이라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사람이라는 반증이라고.
분명히 좋아하는데 세상의 속도와는 달랐기 때문에 스스로를 계속 검열했던 것뿐이다.
앞으로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밝히려 한다.
그동안 지속성이라는 단어에 발목이 잡혀, 내가 무언가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 못했다.
민망했다.
어차피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면 또 딴소리를 할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런 과거는 이제 흘려보내고 난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를 받아들일 사람은 내 곁에 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떠날 것이다.
인생의 이치가 그렇다.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사람을 대하면 된다.
스스로를 검열해서 타인에게 비칠 자신을 재단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제, 지속되지 않아도 진짜였던 나의 '좋아함'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들이 나였고, 그 감정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좋아한다.
비록 내일은 잊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뜨겁게.
나는 꾸준히 하지 못해도,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끝내 완벽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를 숨기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