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의 자백

"자백"의 뜻은 자신의 죄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여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by 박홍시

읽기 전에.

이 글에는 삶에 대한 깊은 회의, 자기혐오, 자살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감정의 날씨가 흐리다면, 지금은 잠시 닫아두어도 괜찮습니다.

꼭 안전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또 삶의 동력을 잃어간다.


만성 우울증, 성인 ADHD.

우울증 낫게 해 보려다 살만 뒤룩뒤룩 쪘다. 곧 있으면 내 발가락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몸무게는 곧 세 자릿수, 네 자릿수 나아가 다섯 자릿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 또한 나를 괴롭힌다.

키도 크지 않아서 비율은 나락을 갔다.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던 얼굴도 살 속에 파묻혀 빛을 잃었다.

얼굴은 이제 오로지 기능만 남았다.

나에게 시각, 후각, 청각, 미각을 제공하는 센서일 뿐이다.

나는 우울한데 성인병도 있는 돼지가 되어버렸다.


마땅한 돈벌이도 없고,

달리 하는 것도 없다.

부모님 등쌀에 못 이겨 작은 사업도 시작했으나, 하기 싫어 죽을 것 같다.

나는 이 정도의 인간이다.

하루 두 시간 정도 몸 쓰는 일도 못하고,

남들 다 졸업하는 대학도 졸업이 무서워 개기고 있으며,

다이어트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일어나서 씻는 것조차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한심한 인간이다.

게다가 기분 좋게 하루를 마감한 사람들에게 이 글을 읽게 했다.


삶은 고통이다.

대체 왜 태어났으며 왜 이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끝엔 뭐가 있을지 이젠 알고 싶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

온갖 동기부여 콘텐츠에선 긍정적인 말을 쏟아낸다.

그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내가 더욱 작아지는 공격처럼 느껴진다.

벌떡 일어나서 방청소부터 하라는 유명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도,

그냥 하라는 멋진 유튜버들의 격려에도,

잘하고 있다는 감성글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고,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내가 미워진다.


먹지 않는다, 많이 움직인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는다.

기타 등등.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 정말 최악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그 무엇도 이뤄낸 게 없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열심히 살라는 응원은 날 더 겁먹게 만든다.

대체 왜 태어났으며 왜 이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살은 죄악시된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죽는 것도 내 선택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다.

죽어서도 비난당할게 두렵다.

죽어서도 부모님을 슬프게 할 것이 두렵다.

죽어서도 장례식 비용마저 부담되게 할 것이 두렵다.


내가 죽으면 한 손으로 꼽고도 손가락이 남을 지인들이 와서 절을 두 번 하겠지.

내가 죽으면 어머니, 아버지가 충격받으시겠지.

내가 죽으면...


이런 생각을 떨쳐보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씻었다.

에어컨을 틀고 누웠다.

슬펐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우울함만이 내 주변을 적셨다.

파랗게 젖은 내 방은 그 음습함이 주변에도 느껴졌는지, 어머니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 사실조차 슬프다.


나는 왜 병을 앓고 있을까.

나는 왜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도 많은데 나 혼자 바보처럼 멈춰있는 걸까.

나는 왜 아무것도 못할까.

나는 왜 저 사람들처럼 행복할 수 없을까.

나는 왜 마음 편하게 남 탓을 하며 살아가지 못할까.

나는 왜...


내 삶은 죄악이다.

태어남으로써 너무 많은 이에게 고통, 걱정 그리고 슬픔을 전했다.

그 죄를 이렇게 낱낱이 고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

언제까지 땀 흘려 일해야 마음이 좀 편해질까?

얼마나 부모님께 돈을 드려야 마음이 좀 편해질까?

얼마나 살을 빼고 날씬해지고 잘생겨져야 마음이 좀 편해질까?

나는 결코 마음이 편해질 수 없을 것이다.


죽을 마음만 가득하고 용기나 실행력 없는 내가 원망스럽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이런 날도 있는 거야."

"나만 우울한 건 아니야. 약한 소리 하지 말자."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잠이나 자자."

그 어느 것도 먹히질 않는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향한 자해와 핍박을 수십 번 반복하고서야 겨우 잠이 들 것이다.

결국 나는 맛있는 거 먹어서 살만 찌고 계속 우울할 것이다.


이 실없고 슬프기만 한 글의 마무리도 생각해 놓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슬픔이 너무 넘쳐 마구 새어 나오고 있다.

열려있는 수도꼭지를 어떻게든 잠가보려 애쓰지만 소용이 없다.

어쩌면 애초에 수도꼭지는 장식이었을지도.


난 절대 결혼을 하거나 애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평생 나에게서 안 좋은 감정만 얻어갈 한 명의 여성이 너무나도 가엾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울함 가득한 아버지에게 클 한 명의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하다.

혹여나 내 아이가 나를 닮아서, 이 참담한 굴레를 하나 더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내 삶은 죄악이다.

이것을 자백하고 나는 또 살아가려고 한다.

왜냐면 난 콱 죽어버리는 것조차 못하는 실행력 0의 인간말종이니까.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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