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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Apr 11. 2023

AP Alchemy Side A 소감

    우리나라 힙합에서 어쩌면 큰일이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최초의 지주 회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힙합은 크루, 레이블이나 조금 커도 소속사 정도 수준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스윙스는 이러한 관례를 깨고 본인 소속의 회사를 모두 묶어 "AP Alchemy"라는 지주 회사를 설립했다. 사실 회사의 형태가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실력과 자본(이조차도 빈지노의 초창기를 보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과 받혀준다면 굳이 회사가 없더라도 뛰어난 앨범을 만들어 내는 음악가들도 간간이 등장한다. 물론 아무리 음악이 재능에 영역이 있더라도, 기본적인 인프라는 필요하기 마련이다. 스윙스는 그러한 관점에서 이런저런 회사와 레이블을 만들며 힙합 게임을 넓혀왔다. 그러나 초창기 저스트 뮤직과 스윙스 사단의 황금기를 장식한 인디고 이후로는 영향력이 점점 적어진 느낌을 준다. 필자 또한 꾸준히 팔로우 업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하위 레이블과 아티스트가 갈수록 많아지고, 그것을 모두 즐기기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예전처럼 컴필레이션이나 대규모 앨범도 보기 드물어졌다. 스윙스는 이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해 아예 하나의 회사로 묶고, 그 밑에 하위분류를 만들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지주 회사 설립을 통해 에이피알케미는 한국에 그 어떤 힙합 회사(또는 일부 아티스트 소속사들)보다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결성된 에이피알케미의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이자 회사와 동명의 앨범인 [AP Alchemy]의 Side A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사장이자 참여 아티스트인 스윙스는 이 앨범에 대단히 자신이 있어 보였다. 유튜브에서 이뤄진 여러 인터뷰와 마케팅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대규모로 참여한 선공개 싱글을 두 장 내고, Side A를 발매한 이후 또 싱글을 발매하고 나머지 Side B를 발매하는 형식이었다. 이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청자 입장에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물론 퀄리티가 보장되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싱글 몇 가지로 기대감을 고조시킨 이후, 앨범 하나를 드랍해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다시 이것을 반복하며 새로운 회사의 설립이라는 이벤트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마케팅이다.


    그렇게 나온 앨범은 어떨까?

https://youtu.be/ijXmeC-FsSI


    일단 앨범을 듣자마자 드는 생각은 '대단히 무난한 앨범'이라는 생각이었다. 굳이 대단히를 붙이는 이유는 그 퀄리티에 있다. 모든 곡들이 크게 쳐지는 부분 없이 모두 들을만하다. 최근에 이것과 비슷한 인상을 받은 앨범은 [Lil Moshpit - AAA]가 있었다. 곡 각각의 유기성이나, 앨범을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는 없으나 각각의 곡이 전부 '힙합'이고 그 수준이 아주 높으며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보니 유기성이나 서사를 기대할 수는 없기에 이는 그냥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말이 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트랙은 몇 가지 없으나, 대부분이 트렌드를 아주 앞서지는 않더라도 최신 음악의 티를 팍팍 내면서도 아이덴티티가 있다. 리드 싱글도 세 개나 존재하며, 스윙스 아래에 있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이래저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단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는 점은 블랙넛과 스윙스의 재기와 다민이의 포지셔닝이다. 블랙넛은 뛰어난 랩 실력을 가지고 있으나, 계속 앨범을 내지 않아 팬들의 원성을 사는 것으로 유명했다. 만화계의 토가시나 양영순처럼, 오히려 랩을 잘하기 때문에 욕을 먹는 케이스이다. 그러나 이번 AP Alchemy의 설립을 통해 복귀 타이밍을 잡은 것 같다. 실키 보이즈의 이름으로도 트랙을 몇 개 냈으며, 실키 보이즈가 더 이상 싱글 몇 개 내고 잠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아직 Side B가 나오지 않아 전체를 조망할 수는 없지만, 일단 거대한 프로젝트에 얼굴을 비추긴 했다. 이것만으로도 블랙넛의 팬들에겐 건질만한 것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스윙스 또한 쇼미더머니 이전까지 음악에 관심이 떨어졌던 건지, 이런저런 사업에 바빴던 건지 둘 다였던 건지 침체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Side A는 그것에 대한 반박을 하듯 빡센 랩으로 트랙을 압도한다. 아직까지 플레이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듯 내지르는 랩은 울분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또한 이전에 비해 달라진 점은 더욱더 그루비 해졌다는 것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스윙스의 랩은 앵그리 랩에 재밌는 펀치라인을 엮은 랩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물론 쇼미더머니 음원 미션에서 이것저것 하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딱히 잘 맞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Chairman Freestyle]과 같은 Chill 하지만 랩 실력을 과시하는 트랙에서 특유의 톤을 살려서도 나지막하게 랩하는 것을 뛰어나게 소화하며 트랙을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스윙스의 스펙트럼을 느꼈다. 또한 여전히 [No One Likes Us]나 [step back b**** 'cause I'm too fye]에서 스윙스 특유의 여전함을 시원하게 보여주며 사장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로서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또한 개인적으론 다민이가 힙합 씬에서 갑자기 주목받으며 작업물로써 보여준 것이 부족하다는 인상이었다. 다민이는 몇 가지 피처링, 쇼미더머니, 그리고 싱글 앨범 외에는 딱히 작업물로써 증명한 것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앨범은 데뷔 앨범이라고 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앨범에 잘 녹아들었다. 늘 지적받던 딜리버리 문제나 톤의 호불호를 정면돌파하듯 앨범에 그대로 녹여냈다. 따라서 당연히 문제점은 여전히 있으나, 앨범의 무드에 잘 녹아들어 귀 자체를 즐겁게 하는 랩으로 정착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원래도 뛰어난 랩을 보여주었고, 최근에 필자가 굉장히 기대 중인 키드밀리도 [Warrior]의 훅을 멋있게 소화하고 마지막 트랙에선 '찢었다'라고 생각한다. 쫀득하게 계속 몸집을 불리는 노윤하도 모든 벌스가 비트 불문하고 잘 맞았다. 이외에도 잠깐 잊혔던 윤훼이, 다들 기다렸던 그냥노창, 영입에 이런저런 의문이 나왔던 김상민 등 수많은 래퍼가 자신의 장점을 잘 보여주었다.


    이번 앨범은 다른 무엇보다 비트 메이커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JINBO, sAewoo, 그냥노창, Mist, YEOHO, hyeminsong, Matt, Wiz World과 같은 스윙스 휘하의 다양한 레이블에서 선발된 비트 메이커들의 비트는 놀랍도록 좋다. 붐뱁이나 트랩과 같은 장르를 가지지 않은 다양한 비트 풀을 보여준다. [Young Muthafuckas] 같은 웨스트 코스트 힙합 같은 트랙부터, [step back b**** 'cause I'm too fye]처럼 익스페리멘탈 하면서도 빠른 비트의 곡도 있으며, [No One Likes Us]는 우리가 파급효과와 같은 앨범에서 충격받았던 노창만이 들려주는 묘한 비트까지 장르의 폭이 넓다. 최근에 힙합 앨범은 대부분 큰 한 가지 줄기를 따르는 경향이 강하고, 그것을 좋은 앨범의 조건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컴필레이션 앨범인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함과 더불어 그냥 대충 틀어놓아도 듣기 좋은 앨범으로 만들어져 듣는 재미가 더욱 있다. 애초에 앨범 자체를 '앨범이 아닌 플레이 리스트'라고 말한 것에 아주 적합한 앨범 구성이다. 아주 쌈박한 비트(특히 앨범 전체에 놓인 베이스 라인과 무슨 악기를 사용한 것인지 궁금한 멜로디) 들이 상술하였듯이 그 흐름에 아주 큰 기여를 하고 있다. [CAN'T STOP]과 [Pot]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루비 함이 중간에 환기를 시켜주는 등, 힙합이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재생하면 되는 그런 앨범의 포지션이다. 상술했던 [AAA]도 비슷한 관점에서 굉장히 고평가 했었는데, [AP Alchemy]는 아무래도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보니 다양한 비트메이커의 각자의 그루브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점에서 더욱 즐거웠다. [AAA]와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휘민의 개인적인 힙합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하는 기분이었다면, [AP Alchemy]는 수많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장기자랑 같은 느낌이다.


https://youtu.be/ypXaJqmJ34U


    그중에서도 가장 좋게 들었던 트랙은 [step back b**** 'cause I'm too fye] (이하 step back) 이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정신없는 힙합'이라 가산점이 더해졌다. 세우 특유의 실험적인 비트(저지 클럽, 주벳의 울음소리 등 재미있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에 Raf Sandou의 성공적인 스타트, 키드밀리의 변화무쌍한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랩으로 시작해, 중간에 인터미션처럼 튀어나오는 훅과 공격성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스윙스의 랩, 래핑 자체가 발전한 윤훼이로 공격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숨 막힐 정도로 몰아 붙이는 전개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IMJMWDP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다. Spotify에서 했던 HAN PROJECT의 첫 번째 싱글인 [Seoul City]가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으면서도 2% 아쉬운 느낌을 주었는데, 세우가 이 곡에서 그 가려움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듯한 구성이다. iiso는 곡의 후반부 변주를 이끌어내며 몽환적이면서도 신나게 곡을 끝내는 모순적인 재미를 준다. 이 곡은 다른 레이블이 잘 보여주지 않는 얼터너티브 하면서도 저급하지만 퀄리티는 높은 스윙스 사단 특유의 맛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었다. 올해에 나오려고 작정한 앨범 중 기대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으나, 적어도 가장 마음에 드는 트랙은 이 트랙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마케팅 구조가 개인적으론 슬슬 지루하다고 느껴지고, 차후 곡에 대한 기대감을 이어가기엔 조금 흐름이 느리지 않나 싶다. 또한 아티스트 수가 굉장히 많은 회사에서 스윙스와 다민이의 듀오 앨범에 나머지가 피처링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티스트 분량의 불균형이 아쉽다. 블랙넛, 키드밀리, 릴타치 등 참여하긴 했으나 구를 만큼 구른 래퍼들의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적었다. 그렇다고 신인들이 날아다닌 트랙이 없냐면 그렇지는 않다만, 싱글부터 다 포함해서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인들은 조금 더 다듬어야 하고, 베테랑들은 조금 더 분량을 늘려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최근의 율음을 데려온 것처럼, [SIDE]에서 레이지 같은 마이크로 장르도 신경 쓴 듯한 것 같으나, 개인적으론 트랙의 중후반부 전체가 흐름적으로 처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는 신인들의 입단을 너무 최신 장르 위주로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이 오토튠을 기반으로 한 싱잉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앨범 사이에서 나름의 영역은 있으나 아주 공격적이고 빠른 템포의 곡 사이에 배치를 해놓으니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좋은 퀄리티와 신인들 각각의 색을 보여주어 마냥 구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DUT2가 귀에 쏙 들어왔다.


    요약하자면, 여러모로 괜찮은 앨범이다. 여러 장르를 폭넓게 소화하고, 신과 구의 조화가 있으며, 스윙스 휘하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맛 또한 여전히 유지했다. Side B에선 어떤 트랙이 나올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파급효과를 넘었느냐?라는 질문에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다만 Side A까지의 평가는 최소한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파급효과의 파급효과를 생각해 보면, 비슷하다는 평가 자체가 최소한 수작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Side B에서 A 이상을 보여준다면, 파급효과를 넘었느냐 마느냐에 확실한 이야기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B가 A와 비슷한 수준이더라도, 최소한 파급효과와의 비교를 피해 서로의 장점이 있는 좋은 앨범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AP Alchemy - AP Alchemy Side A. 7/10점


"요즘 힙합의 집대성, 세대의 교체, 괜찮은 앨범."


https://blog.naver.com/axax_xxyyxxx/223060898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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