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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Apr 17. 2023

카와이 베이스에 대한 짧은 생각

    일렉트로니카가 한번 대중가요를 뒤집고 나서 음악계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하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할 말이 많다. 그전부터 그러한 흐름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의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는 전자 음악의 요소가 침입했다. 미디 그러니까 DAW를 통해 더욱 섬세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실력의 척도의 한 갈래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젠 컨트리, 포크와 같은 장르에도 조금씩 일렉트로닉의 양념이 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오기 이전부터 음지에서 일렉트로닉을 갈고닦아오던 세력이 있으니. 바로 '오타쿠'이다. 요즘에야 의미가 많이 확장되어 주제와 관계없이 덕질을 하면 오타쿠라고 불리는 시대가 되었으나, 2010년대만 하여도 일본의 문화에 심취한 사람,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사람을 오타쿠라고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이들의 레퍼런스는 체크무늬 셔츠에 더벅머리, 집에는 온갖 피규어나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들로 도배된 방에 사는 모습이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음악이란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았을까?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대중들보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에 더욱 이해도가 높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대중들이 듣고 즐기는 노래를 '인싸문화'라고 배척하고, 애니 OST, 보컬로이드와 같은 기본적으로 오타쿠 문화에 근간이 있는 음악들을 즐겨왔다. 이런 오타쿠 음악은 이미 역사가 깊다. 2007년도 하츠네 미쿠(보컬로이드; 야마하에서 개발한 음성 합성 엔진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없어도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의 발매 이후 보컬을 사용하지 못했던 수많은 오타쿠 아티스트들의 전성기가 열렸다. 이 전성기는 오타쿠를 대표하는 캐릭터로써 하츠네 미쿠가 자리 잡게 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동방 프로젝트라는 게임을 통해 과격하고 공격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이 오타쿠 사이에서 대중화되는 경향도 생겨났다.


    온갖 합성물과 웃기려고 만든 노래들을 통해 실력이 갈고닦아진 오타쿠 프로듀서들은 비로소 새로운 장르적 갈래를 만들어 내는 지경까지 왔다. 그것이 바로 '카와이 베이스'이다. 카와이 베이스는 퓨처 베이스라는 일렉트로닉 하위 장르의 하위 장르이다. 퓨처 베이스라는 장르의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논란이 있긴 하다만, 그런 것은 제쳐두고 카와이 베이스를 바라보자. 카와이 베이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굉장히 일본스러운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다. 웡키(힙합의 하위 장르로써 살짝 느리고 현악기가 덧대진 음악)를 기반으로 오타쿠들이나 알만한 샘플링을 마구 덧대고,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로 템포를 빠르게 해서 만드는 음악이다. 숨 막힐 정도로 빠른 음악에 귀여운 일본 성우들이 덧대졌기에 이미 대중성과는 거리를 둔 듯한 이 음악의 재미있는 점은, 굉장히 일본스러운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원래도 진보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더욱 진보적으로 만들어 전위적이기까지 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 


https://youtu.be/Ur-tSeXYQpk


    한동안 유행했던 글릿 합(흔히 매드 무비 브금이라고 불리는 그것. NCS의 음악이 대표적이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나름 익숙하게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칩튠 사운드, 소프트 스퀘어 웨이브를 사용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으나, 그마저도 작곡가마다 제각각이다. 


https://youtu.be/3nlSDxvt6JU

장르의 창시자라고 일컬어 지는 Snail's House의 대표곡이다


    신식 장르 대부분이 그렇듯이 딱히 구분할 수 있는 확실한 경계는 없으나, 듣다 보면 "아~" 하는 그런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와이 베이스는 주로 일본과 관련된 샘플링을 했을 때 인정받는 편이다. 일렉트로닉 음악은 황금기 이후 대중적으로 흡수된 갈래와 이전보다 더욱 마이너 한 곳으로 돌아간 음악 두 갈래가 되었다. 후자에 속하는 카와이 베이스와 하드코어 일렉트로닉은 다시 전위적인 형태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런 음악의 듣는 재미인 오밀조밀하고 빈틈없는 음악은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대중적으로 오기엔 많이 멀었지만, 그나마 대중화된 예시를 꼽아보자면 게임 [블루 아카이브]가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aT5ES5e6Cyg

블루 아카이브 OST의 리믹스 버전이다. 노동요로도 가끔 듣는다.

    최근에 나온 오타쿠 성향 게임인 블루 아카이브가 필자가 놀랄 정도로 고퀄리티의 카와이 베이스로 중무장한 것을 보고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 가장 잘나가는 카와이 베이스 음악을 듣고 싶다면, 그냥 이 게임의 OST 모음을 들어보면 된다. 다만 더욱 마이너 한 카와이 베이스에 비해 약간 희석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냥 잘 만들어진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혹시나 강렬하고 독특하면서도 남들이 잘 듣지 않는 장르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카와이 베이스를 꼭 들어보길 바란다. 이미 예전부터 음지에선 음악적으로 자기 자리가 확고했고, 잘 안 알려졌을 뿐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다. 대중과 일절 타협하지 않던 장르적 특성을 깨버린 블루 아카이브의 음악은 대중적인 작곡가들의 귀에도 들릴 것이고, 조금씩 일본 음악을 침범하고 있고, 그것은 장차 이런저런 나라의 일렉트로닉 음악에 스며들어 일반 대중의 탑 100 차트에도 언젠간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음지의 트렌드가 양지로 올라온 사례는 끊임없이 있었다. 현재 일렉트로닉 씬에는 하이퍼 팝이 다음 트렌드로 꼽히고 있는 상황이지만, 필자는 카와이 베이스도 그 정도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방가르드하고 키치 한 하이퍼 팝과, 전통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지키면서도 다양한 재미요소를 넣어서 듣는 재미를 극대화 한 카와이 베이스는 과연 대중성이라는 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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