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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Jun 18. 2023

High as Hope 앨범 후기

Florence + the Machine

특이한 사운드를 가진 밴드는 많지만, 특이한 분위기를 가진 밴드는 찾아보기 드물다. 그중에서도 [Florence + The Machine(이하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은 보기 드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하프부터 시작해, 플로렌스 웰치의 특이한 보컬과 그녀가 작곡한 곡들의 독특한 분위기는 유독 귀를 파고든다. 그들은 현대 대중음악에서 고딕을 외치고 있다. 그들의 정규 4집에 대해 알아보자.


마치 ‘나 영국 밴드다!’라고 외치는 독선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나, 포멀한 브릿팝과는 완전히 동떨어져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 고전 영국 문학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분위기이다. 모든 것이 고풍스럽고, 적절히 포인트가 잡힌 현대 악기와의 조화가 신구의 조화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앨범은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앨범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마치 황혼에 접어든 엘프의 숲 사이에 떨어진 듯한 무드의 인트로 트랙 <June>이 가장 먼저 청자를 맞이하는데,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사운드를 여지없이 들려준다. 주문처럼 맴도는 “Too each other”는 마법에 빠지듯이 음악에 몰입 시킨다. 스트링과 금관 악기, 독특한 플로렌스 웰치의 보컬은 서로 합쳐져 이 앨범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며 다음 곡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타이틀곡 <Hunger>는 플로렌스 특유의 창법이 유독 빛나는 트랙이다. 곧 끊어질 것 같고, 아파 죽기 직전의 목소리와 힘 있고 강렬한 여성 보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창법과 웅장한 사운드는 과연 이 밴드를 락이라는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전반적으로 <Hunger>에서 주는 인상과 비슷한 결로 앨범이 흘러가지만, 이미 완성된 어트모스피어를 이어가며 각기 다른 멜로디와 내용을 들려주는 이 앨범에서 적어도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다.


플로렌스 웰치와 밴드의 멤버들은 판타지 영화 같은 음악을 이끌어 가면서도 팝의 요점인 강렬한 멜로디를 통한 뇌의 속박 또한 놓치지 않았다. 모든 수록곡이 묘하게 락과 팝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묘하게 그 밖에 있다. 마치 선을 밟으며 춤을 춘다고나 할까. <Big God>과 같은 트랙이 딱 그렇다. 뉴에이지라고 해야 할까 싶은 음악 사이사이에 킬링 포인트가 되는 사운드 이펙트를 통해 새로우면서도 고풍스러운 특이한 경험을 창출해낸다. 성스러운 음악과 죄악의 음악 어딘가에 있는 듯한 고의적인 분위기는 듣는 사람을 심란하지만 빠져들게 만든다. 그것의 정점은 음악 종반부에 나오는 보컬 프라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게 이어지는 소리지만 점점 줄어드는 반주와 함께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Grace>는 이 앨범에서도 특히 사랑스러운 곡이다. 섬세하고 작게, 그러나 무겁게 시작해 끝으로 치달을수록 이 밴드 특유의 웅장함과 고딕스러움을 양껏 뽐내는 구성이 매력적이다. 앨범을 거듭하며 금관악기가 추가되거나, 컨트리풍을 덧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들만의 분위기를 완성시킨 4집은 다시 말하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이다. 특히 이 곡에서는 잔잔한 피아노가 귀를 간질이고, 웅장한 베이스와 코러스가 무겁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시작된다. 그러나 합창이 곡에 들어오고 점점 격정적으로 변하는 웰치의 보컬은 듣는 이를 압도되게 한다. 이러한 올드 타입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하면서도 이젠 찾아보긴 힘든 판타스틱한 분위기가 이 앨범의 아이덴티티이자 장점이다. 이어지는 <Patricia>는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댄스 음악을 들려준다. 마치 중세 마을의 연회에서 들릴 법한 베이스 라인과 특유의 웅장함을 잘 손질해 섞은 이 곡은 신이 나면서도 슬프고, 옛것이면서도 새로운 이 밴드의 모순적인 면모를 가장 잘 연출하는 곡이다.


이 밴드는 전반적으로 긴 곡들의 구성과 분위기, 프런트 우먼의 신비한 창법까지 모든 것이 트렌드와는 척을 진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오래전에 근본을 두고서 쌓아진 영국의 맛과 완성도 높은 음악성이 현대 대중음악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를 오히려 잡아끈다. 붙잡히듯이 들은 <Hunger>, <Grace>는 실로 놀라웠다. 클래식과 현대 음악 사이를 잇는 다리를 다시 가져와 리모델링한 듯한 음악성은 매우 유니크하고 아름다웠다. 지속적으로 서술해오듯이 모순적인 점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것이 그것대로 조화를 이루고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플로렌스와 기계들은 그것이 갈고닦아지다 못해 취향 밖의 사람들도 설득할 정도로 음악이 발전했다. 그들의 앨범은 숫자를 올릴수록 더욱 높고 유일한 길을 바라보고, 걷고 있다. 만약 당신이 고풍스럽고 고딕 한 분위기 혹은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인디밴드를 들어보고 싶다면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을 강추한다.


<<Florence + The Machine - High As Hope>> 9/10점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트렌드는 개나 줘라.“


[!전곡 추천!]

1. June

2. Hunger

3. South London Forever 

4. Big God

5. Sky Full of Song

6. Grace

7. Patricia

8. 100 Years

9. The End of Love

10. No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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