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다시 돌아온 죽음> 줄거리
정요섭 형사는 도로에 계속해서 죽은 말들이 떨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조사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로 보였으나, 매일 새벽 같은 자리에서 말이 떨어져 죽는 일이 반복되며 불안감이 커진다. 사건이 초자연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정요섭은 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닌 무언가 더 큰 비밀과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 상인의 제보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의식을 치르듯 말의 죽음을 지켜보았다는 정보도 얻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에선 말들의 죽음이 일상화되고,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점점 더 두려워한다. 죽은 말들이 도시 곳곳에 퍼지며 공포가 극에 달하고, 이 사건이 전염병과 저주 같은 초자연적 재앙일 수 있다는 불안이 도시를 휘감는다.
#5
그러고 며칠 뒤부터 도심 곳곳에서 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죽음의 시작이었다. 말들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더니, 도로 한가운데, 광장 중앙, 심지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그대로 툭 하고 쓰러졌다.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듯 갑작스럽고 무차별적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말들이 떨어질 때마다 그 무게로 인해 주차된 차는 찌그러지고, 지나가던 수레는 부서져 뒤집혔다. 말의 무거운 몸뚱이가 부딪히는 소리는 공기 중에서 둔탁하게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었다. 점점 늘어가는 말들의 시신은 길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신 하나하나가 비극의 증표처럼 무참하게 쌓여갔다.
사람들은 경악하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단순한 사고나 불운의 연속이라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 이를테면 저주가 도시에 퍼지고 있었다. 말들 사이에는 살아남은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오래 견디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고통에 몸을 비틀며 일어서려고 애썼으나, 그 허우적거림은 곧 잦아들고, 마침내 그들도 땅으로 고꾸라졌다. 천천히 숨이 잦아들면서 생명의 마지막 불꽃이 꺼져갔다. 그 말들의 움직임은 마치 살아남으려는 필사적인 발버둥 같았지만, 결국 죽음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조차 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그 끔찍한 소리는 귀를 파고들고, 피할 길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어디서 감염된 걸까?"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
라는 얘기들이 돌았지만,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죽음은 더 자주, 더 불규칙하게 찾아왔고, 말들이 쓰러지는 곳마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이 되었다. 단순히 병든 말 몇 마리가 쓰러졌다고 할 수 없었다. 길 한가운데, 시장에서, 광장 한복판에서, 도로 위에서 말들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나, 그 자리에 쓰러지고는 죽음을 맞았다. 그 장면은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잔인한 연극처럼 느껴졌다. 죽어가는 말들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그저 두려움에 휩싸였다. 소문이 아닌 현실이었다. 거짓이 아닌 사실로 판명난 소문의 진실 여부는 이제 무의미했다. 말들의 죽음은 점차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일상에 스며든 불길한 기운은 모두를 질리게 했고, 성경을 떠나야 할 필연적 근거가 되었다.
말들의 대량 죽음이라는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이 적어도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려면, 전염병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갑자기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리적 현상을 전염병과 연결시킬 수는 없었지만, 당장에 닥친 압도적인 괴이함으로 짓눌린 채 사람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이 현상이 당장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전염병이라면 그것이 인간에게 전염되는가, 치사율은 어느 정도 되는가, 대비책은 있는가 하는 문제로 쟁점이 옮겨졌다. 저주의 원인과 말들의 관계 같은 것보다 당장 자신의 생존 여부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고 내용도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주술에 걸리지 않기 위한 것인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인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일단 말 근처로 다가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거리에서 말 시신을 피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설령 말에게서 떨어져 있더라도, 뜬금없이 추락하는 말의 시신에 깔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옭아맸다. 시민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누구도 쉽게 길거리를 활보하지 못했다. 거리는 빠르게 한산해졌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집 안에 몸을 숨겼다.
말들의 죽음은 마치 느닷없이 걸려버린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소문이 멀리 퍼질 겨를조차 주지 않았고, 사건의 합리적 원인을 따질 시간도 없었다. 도시는 말들의 시신으로 뒤덮였고, 사람들은 무력하게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긴 사람들이라면 이건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무언가 더 큰 비극의 전조 같았다. 바이러스를 피하려 하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우박에 맞지 않으려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인 재앙처럼, 죽음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말의 죽음이라는 형식으로 사방에서 느닷없이 다가왔다고 여겼다. 그 죽음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도시의 길거리는 눅눅한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사방에서 시신에 꼬인 날벌레가 날갯소리 치열하게 내며 말 입술의 거품 주변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형사 정요섭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김요섭의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긍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6
도읍 성경의 구약동은 죽음 같은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길거리마다, 건물 사이마다 기묘한 긴장이 번져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공기는 숨이 막힐 듯 짙고 무거웠다. 도시는 마치 커다란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멈춘 것처럼, 기다림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마치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길가에는 수많은 구약의 말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몇 마리만 신음하며 바닥에 눌어붙어 토사물을 뱉어내던 그 초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온 거리가 지독한 악취와 기괴한 비명으로 가득했다.
정요섭은 경찰서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진술서를 읽으며 지쳐서 잠들 만큼 업무가 과중해졌다. 바깥으로 나가지는 못한 채 종이 냄새만 맡다가 깜빡 잠에 들었을 때는 심지어 이런 꿈도 꾸었다. ‘꿈에서는 말들이 종이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 다시 지면에 미끄러져 내렸다. 종이에 담긴 말들은 종종 현실이 되곤 했다. 성경은 말의 힘과 말의 기적으로 살아가는 곳이었으므로, 말의 저주도 있기 마련이었다. 말이 종이 바깥으로 나오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간절히 부정하려는 듯 발버둥 쳤지만, 결국 고꾸라져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발을 헛디디는 느낌에 깜짝 놀라 깨어난 정요섭은 탄식했다. 꿈에서 있는 일보다 더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쓰러진 수많은 구약의 말 중 어떤 말은 숨을 쉬는 것도 아닌 듯 조용히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몸뚱이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그중 어떤 말들은 지친 듯이 헐떡이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말들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고, 그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고통이 서려 있었다. 때때로 그들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꿈틀대면, 낡은 돌바닥에서 마찰음이 났다. 육중한 숨소리는 거리에 퍼져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들의 갈라진 입가로는 거품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말들이 한 마리씩, 두 마리씩 고꾸라질 때마다 그들의 눈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 구약의 말들은 살아 있는 존재처럼,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땅에 몸을 묻어가고 있었다. 말들은 토사물을 흩뿌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고, 눈동자는 고통에 일그러지며 풀려갔다. 마치 구약동 전체가 말들의 곤경에 대한 거대한 무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역병의 징후가 뚜렷이 드러났다. 도시의 중심, 성문 주변에는 말들의 시체가 잔뜩 쌓여 있었다. 무너진 성문 사이로 몇몇 말들은 아직도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려 애썼고, 그러다 지면에 고꾸라지며 목을 꺾었다. 이내 그들의 눈은 점점 더 멀어져갔고, 숨은 끊어졌다. 거리에는 피 냄새와 썩은 살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냄새에 코를 막았고, 말을 잡아끌며 멀리 도망가려 했지만, 피어오르는 역병의 기운은 더욱 강력하게 도읍을 휘감고 있었다. 말들이 쌓여 있는 거리마다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 위로 얇은 잿더미와 붉은 핏자국이 교차하며 길을 더럽혔다.
누구도 도읍을 제대로 걷지 못했고, 말들의 축 늘어진 몸뚱이가 발길을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고, 마침내 말들의 사체와 증오로 물든 도읍 성경은 어둡고 불길한 공간이 되었다. 공기는 무거웠고,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것이 말라붙고 파괴된 느낌이 들었으며, 말들의 마지막 고통스러운 발작이 도시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으로 남아 있었다. 구약동의 도읍은 끝없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는 고요 속에서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문을 꼭 닫고 창문 너머로 어두운 눈빛을 흘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하나 감히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한 채, 바깥에서 벌어질 일들을 숨죽여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먼지와 모래알이 길가에 흩뿌려져 있었지만, 그마저도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길 위의 모든 것이 가라앉아 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불쾌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디에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만으로도 차갑고 긴 음울한 기운이 공중을 가르며 퍼져 나갔다.
길모퉁이에는 오래된 가게의 간판이 삐걱거리며 흔들렸고, 그 작은 소리마저 마치 커다란 종이 울리는 것처럼 길게 메아리쳤다. 누군가 창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는 단절된 고요 속에서 울컥하고 터져 나와, 그 공기의 무게에 매달려 바닥까지 떨어지는 듯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삼키며 다시 침묵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구약의 말들은 길바닥에 찌든 몸을 뒤척였다. 도심을 관통하는 길목마다 잔뜩 웅크린 구약의 말들이 잔뜩 눌려 있었다. 그 사소한 움직임조차 도시의 고요를 어지럽히고, 그로 인해 더욱 깊은 정적이 밀려들었다. 말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그 소리가 바닥을 타고 퍼져 나갔다. 어느 순간, 말들이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마치 땅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 숨소리는 점점 더 빠르게, 더 거칠어졌다.
공기는 무겁고 끈적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침묵은 조용함 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가 곧 일어날 것 같은 숨 막히는 예감을 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무게에 눌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창문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모든 것이 동시에 터질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먼 곳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몇몇 사람들이 황급히 창문을 닫고는 안으로 숨어들었다.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도 흠칫 놀라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고, 다른 이들은 그 기침 소리가 멎을 때까지 조용히 숨을 죽였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그 아래에 펼쳐진 성경의 도읍은 무거운 기운으로 눌려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도시를 짓누르며, 사람들은 마치 도망갈 틈을 찾으려는 것처럼 벽 쪽으로 몸을 기댔다.
성경의 골목과 골목 사이에 그늘이 더 짙어졌다. 발끝에 힘을 주며 지나가던 이들도 결국엔 멈춰 섰다. 누구라도 먼저 한 마디를 뱉으면 그 소리로 인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저 고요 속에서, 그러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며, 성경의 도읍은 팽팽히 당겨진 현처럼 긴장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