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편이다. 새로운 음악을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때도 있었는데, 주로 하나의 장르를 깊이 파기보다는 이 세상의 수많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누리다 보니, 다양한 인디 장르들을 듣는 것에서 큰 기쁨을 누리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팝이나 록처럼 일반적으로 흔히 알 만한 대중적 장르를 가장 많이 듣고는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애초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기를 목표로 삼고 작곡하여 발표하는 곡들이 즐비하다 보니, 편하게 또는 매력적으로 들리는 곡이 많은 영역이니, 이를 거부할 힘도 내게는 없다.
평소에도 다양하게 대중음악을 듣지만, 한 번 마음에 든 음악을 반복해서 들을 때도 많은데, 주로 팝과 록의 경우에 그런 빈도가 높은 편이다. 클래식이나 재즈, 그리고 엠비언트 음악의 경우에는 배경음악처럼 깔아두는 경우도 많다 보니, 어떤 곡인지도 모르고 샤워하듯이 음악으로 귀를 씻는 경우도 많다. 분위기를 채우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팝과 록의 경우에는 그러지 않는 편이다. 가사 때문일 것이다. 가사가 외국어라 잘 들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때 가사는 어쩐지 선율과는 다른 느낌으로 정서를 자극한다. 자꾸만 뭔가를 이야기하니, 무슨 내용인지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만큼이나 우리의 주의력을 휘감는 매력적인 선율 때문이다. 자꾸만 흥얼거리게 하는 선명한 선율, 매력적인 가수, 그리고 사연 절절한 가사까지 방해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해야겠다. 이 장르에선 어떻게든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속삭임으로 가득하다. 1분 듣기에서 사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분야라서, 점점 더 감상자를 붙들기 위한 기술이 늘어만 간다.
이런 장르지만, 그래서 인기곡의 분위기에 온통 장악당해서 눈물을 흘리느라, 내가 원래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노래들에 주의력을 빼앗기게 되지만, 그럼에도 글을 쓸 때 팝과 록을 들을 때가 있다.
요즘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자주 애용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단편소설을 쓸 때 마치 주요 테마곡처럼 몇 곡을 선정하거나, 심지어 단 한 곡만을 선정해서는 그 단편소설의 예상되는 줄거리를 상상하면서 음악에 젖어들고는 했다.
그렇게 음악 한 곡을 일주일 가까이, 거의 온종일 들을 때도 있었다. 5분짜리 곡이라고 가정하고, 10시간 글 작업을 했다면, 시간 당 12회, 총 120회를 반복해서 들은 셈이다. 쉬는 시간이 없다고 가정한 것이니, 대략 하루에 100회쯤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5일쯤에 이르니 우울한 곡에 온 몸이 전염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트릿합 곡이었는데, 너무 지쳐서 잠깐 다른 곡도 가끔 섞었으니, 100회보다 덜 들은 것일 수도 있지만, 벌써 몸은 놀라울 정도로 침체되어 있었다. 감정이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동유럽에서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이 유행했고, 당시 젊은 친구들의 자살이 급증했다는 소문도 터무니없게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음악을 그렇게 집중해서 반복하지는 않는 편이고, 또 그때처럼 동기화해서 OST 수준으로 하나만 선택해서 글에 밀착하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어쨌든 이때는 음악의 기운이 글에 침윤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음악이 지닌 선율이 워낙에 강력해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글의 규정된 성격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면서 감상적으로 내용을 개진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이는 문장의 관점에서도 함정이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음악이 없는 채로 이격된 채 문장을 보면, 어쩐지 음악을 들으면서 도취되어 느꼈던 깊이가 온데간데없었다. 뭔가 그 중력을 이길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심취하고 나서 벗어났을 때 그 이질감으로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볼품없게 느끼는 문장도 생기기 마련이다. 마치 A4용지로 인쇄된 글자로 내용을 읽으면 그럴 듯해보이지만, 그냥 메모로만 볼 때는 상대적으로 덜 정돈되어 보이는 것과 유사한 효과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래서 어떤 작가분은 애초에 음악을 듣지 않고 글을 쓴다고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애초에 문장이 느슨하게 뽑힌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한강 작가의 경우엔 대중음악 곡 그것도 한국어로 된 가사의 곡을 들으면서 글의 톤 조절을 하면서 원고를 쓴다고 하니,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한국어로 된 가사의 노래를 들을 때는 대개 글을 쓰다가 음악만 듣게 된다. 가사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면서 주의력을 빼앗긴다고 해야겠다. 더 선명하게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애쓰는 목소리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런 곡을 들으면서 작업하고자 할 때를 볼륨을 최대한 줄여서 배경음악처럼 가사를 듣지 않게끔 환경을 조성하려고 한다. 그래도 곧 다시 볼륨을 키우게 되니, 아무래도 글을 쓸 때는 가사가 있는 곡, 특히 한국어로 된 음악을 잘 고르지 않게 된다.
게다가 앞서도 말했듯이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되어 있어도 가사는 목소리로 전달하기 마련이다. 뭔가 그 안에 비밀이라도 숨어 있을 것 같은지 꼭 그 의미를 찾아보게 되거나, 목소리가 자극하는 결을 따라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가사를 확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메탈 음악의 가사를 상상하면서 혼자서 삐딱하게 가사의 내용을 창작하다가 그걸 시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런 때에는 한동안 록음악, 특히 외국어로 된 가사의 록음악을 즐겨 듣곤 했다. 글쓰기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