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다시 돌아온 죽음> 줄거리
정요섭 형사는 도로에 계속해서 죽은 말들이 떨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조사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로 보였으나, 매일 새벽 같은 자리에서 말이 떨어져 죽는 일이 반복되며 불안감이 커진다. 사건이 초자연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정요섭은 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닌 무언가 더 큰 비밀과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 상인의 제보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의식을 치르듯 말의 죽음을 지켜보았다는 정보도 얻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에선 말들의 죽음이 일상화되고,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점점 더 두려워한다. 죽은 말들이 도시 곳곳에 퍼지며 공포가 극에 달하고, 이 사건이 전염병과 저주 같은 초자연적 재앙일 수 있다는 불안이 도시를 휘감는다.
#3
쿵!
저잣거리의 소란 속에서 또다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말 한 마리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비틀린 다리와 흐릿해진 눈, 그리고 경련을 일으키던 그 몸뚱이는 어제 본 말과 너무나 흡사했다.
‘아니, 어쩌면 정말 어제 죽은 그 말이 아닐까?’
정요섭은 자신도 모르게 잠깐 시선을 피했다. 이내 다시 눈길을 돌렸지만, 이번엔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른 말일까? 그래, 다른 말이겠지. 말이 안 되잖아.’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국과수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라고 지시하며, 정말로 같은 말로 헷갈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같은 말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사고나 불행이 아닌, 그 이상을 의미했다. 그러나 다른 말이라면 그 또한 문제였다. 이미 열 마리가 넘는 말이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고통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조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공기가 묵직해지고, 발걸음조차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같은 말일지, 다른 말일지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반복되는 죽음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불길한 감각이었다. 고양이나 개를 죽이는 연쇄 동물학대범은 줄곧 있었지만, 말을 연쇄적으로 죽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범위가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말의 가격을 고려할 때 이를 감당할 수 있으려면 경제적 능력에서 일단 좁혀진다. 당연히 말의 관리는 체계적이므로, 소유주를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정요섭의 판단대로라면 범인이거나 피해자는 대한민국의 거물일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 있거나 정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아무리 넓게 잡더라도 그 주변 사람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그들의 재산을 훼손해놓고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위치나 관계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초자연적인 시나리오를 잠깐 생각하려다가 정요섭은 피식 웃었다.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신은 형사라고. 엄정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에 두는, 명백한 증거를 잡아야만 하는 대한민국 형사.
시장 한편에서 오가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상인들 중 몇몇은 상을 차리고 물건을 팔며 대화를 이어갔지만,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겁게 들렸다. 그들 사이에 떠도는 불길한 소문은 불길처럼 번졌다. 불길이 점점 사람들의 표정 바깥으로 뚫고 나오려고 했다.
"말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대...“
“그게 말이 돼? 오늘 아침 역마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는 말도 있던데, 정말 역병이 아닐까?”
“그런데 정말 며칠 전 죽은 그 말이면 어쩌지? 너무 닮았잖아...”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또 다른 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말의 죽음이 단순한 우연이나 사고가 아님을. 그 생각이 그들의 의식을 잠식하려는 듯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정요섭은 시장을 돌며 상인들에게 죽은 말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입을 다물고, 아는 게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마침내 한 상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는 죽은 말 근처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있었어. 말을 지켜보면서, 그 주변을 돌면서 뭔가 중얼거리던 사람이었지. 이상하게도... 죽음을 확인한다기보다는 무슨 의식 같은 거랄까. 장례 의식 같은 거 말이야. 난 액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요섭은 그 상인의 말을 듣고 심장이 서서히 뛰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납니까?"
“글쎄, 굳이 몰라도 되는 걸 알려고 하지는 않으니. 고개를 돌렸지 뭐. 모르는 게 나을 때가 많으니까.”
옆에서 잠자코 듣던 상인이 잠시 머뭇거리다 손가락으로 저잣거리 외곽의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오래된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허름하고 주목받지 못한 장소였다.
“말 주변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그냥 걸어서 저 빌딩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그곳에는 별다른 게 없거든. 망한 상가라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하달까. 소송 때문에 그런지 여하튼 가게가 한둘 빠지고 지금은 비어 있는 상가지. 곧 철거 되고 고층 빌딩이 들어설 거란 소문도 있고. 거기엔 아무도 없으니, 전기도 안 들어오고. 딱히 도움이 될 건 없을 거야. 거기서 담배나 피우려고 들어갔겠지. 아, 그런데 거기 문이 열려 있었나?”
“애들이 거기서 뭔 짓을 하는지, 야밤에 몰래 드나든다고는 하드만.”
다른 상인이 담배를 피우며 덧붙였다.
정요섭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불안한 감각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일단 검은 정장의 사내가 있던 곳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딱히 달리 방도가 없기도 했다. 그가 지나간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건물로 들어간 다음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정요섭은 저잣거리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 앞에 섰다. ‘은성고시원’. 낡고 버려진 듯한 외관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아무도 그곳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은 듯했다. 그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건물 안은 어두컴컴했고, 오래된 나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의 휴대폰 손전등 불빛이 먼지에 쌓인 벽과 바닥을 비추자, 삭막한 방안의 정적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벽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금이 가 있었고, 바닥에는 오래된 쓰레기와 이물질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정요섭은 본능적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 불쾌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버려진 건물이 아니었다.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첫 직감이 그랬다.
정요섭은 천천히 방 안을 살피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그때마다 바닥의 나무가 삐걱거렸다. 그는 손전등을 비추며 방을 가로질렀다. 단서를 찾기 전까지는 이곳이 단지 버려진 장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철거가 예정된 낡은 건물에 불과했다. 벽에 걸린 거미줄과 바닥의 먼지만이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때 정요섭은 갑자기 바닥의 일정한 부분이 유난히 더 깨끗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최근에 누군가가 이곳을 청소하거나 손을 댄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천천히 무릎을 꿇고 바닥을 살폈다. 주변은 먼지로 덮여 있었지만, 그 부분만은 반듯하게 닦여 있었다.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요섭은 손으로 바닥을 더듬다가, 미세하게 돌출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는 먼지를 걷어내고 그곳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바닥 밑에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잠시 당황한 채 머뭇거렸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바닥의 나무판자를 들어 올렸다. 아래에는 깊이 감춰진 작은 공간이 있었다.
공간 안에는 수상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곳엔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작은 천과 함께 여러 개의 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촛불을 켠 흔적이 분명했다. 정요섭은 손을 뻗어 천을 꺼냈다. 그 문양은 분명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 이상한 문양은 고대 동아시아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복잡한 한자 비슷한 문자 형태를 띠고 있었다. 바닥에 그려진 문양은 여러 겹의 원과 직선이 겹쳐지며 그 중심에는 정요섭도 알아볼 수 있는 문자가 있었다. '사망(死)'을 뜻하는 한자였다. 이 문양의 중심부는 날카로운 붓놀림처럼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닌, 그 안에 또 다른 작은 상형문자들이 얽혀 있었다. 특히, 그 주변을 둘러싼 기괴한 형상들은 ‘영혼(魂)’과 ‘축(祝)’을 결합한 듯한 모양이었다. 마치 고대 주술적 의식에서 혼령을 불러내거나 무언가를 축원하는 형태였다. 옛 중국의 사서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이 기호는 ‘복귀(復歸)’를 뜻하는 듯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이승으로 불러들이거나, 반대로 사악한 영을 소환해 무언가를 대속시키는 의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정요섭의 머리를 스쳤다. 예전에 사이비 종교의 주술 의식을 행하다가 죽은 사람에 관해 수사할 때 얻어들은 짧은 지식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그 축원문인지 주술문인지 모를 문양을 찍어서 AI에게 문의하니, 곧장 몇몇 한자를 추출해주었고, 유사한 형태의 글귀나 문양으로 연결된 종교 의식도 검색할 수 있었다. 그것은 민속 신앙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동아시아 전반에 퍼져 있는 샤머니즘과 관련 있었다.
문양은 단순한 한자들이 조합된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신비롭고도 위협적인 힘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이 문양의 가장자리에는 몇몇 한자가 흘림체로 거칠게 쓰여 있었고, 그 중 '역(疫)'이라는 글자는 그에게 특별히 눈에 띄었다. 그 단어는 고대 중국에서 전염병과 관련된 주술에 자주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순간, 정요섭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제의 문양은 단순한 예술적 디자인이 아닌, 실제로 악의를 담은 의식의 흔적이었다. 문양에서 풍기는 음습한 기운은 오랜 세월 동안 비밀스럽게 전해져 내려온 고대 주술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심증이 들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조금씩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무언가 의식이 행해졌던 것이다. 누군가가 이곳을 이용해 비밀스러운 일을 계획하고 있었고, 말의 죽음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을 문양이 사건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말의 죽음은 의식을 신비롭게 포장하는 주요한 소재였을 것으로 보였다. 한 마리의 말만 죽은 것인지, 여러 말이 지속적으로 도살된 것인지 밝히고, 어째서 이러한 사교 의식을 했는지, 사람과 관련된 범죄가 조직적으로 행해지는지를 밝혀야 했다. 어쩐지 그런 사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촉이 왔다.
하지만 그러한 수사를 해볼 시간도 없이, 모든 사건은 쓰나미처럼 밀려들 것이었다. 형사 정요섭으로는 미처 몰랐을 뿐... 만일 그 순간에 바로 유전자 검사 결과지에서 ‘해독 불능’이란 진단 내용을 읽었다면 이해 불가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정요섭의 판단으로는 죽은 말은 분명 다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다른 말이어야만 했다. 같은 말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과학적인 결과로도 아무것을 말해주지 않으니, 매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말이 같은 말처럼 보여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마음을 다잡으며 합리적인 이성에 따라 국과수에도 광신도가 포함되어 있는지도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심을 할 필요는 없었다. 뒤늦게 그 결과지를 받아들었을 때는 국과수에서 형사의 질문에 답변할 사람조차 살아남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파괴되었고, 그런 경험을 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 사건 같은 것 말이다.
#4
희한한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저녁, 정요섭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조사 중일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저 말 한 마리가 죽은 사건에서 시작된 소문은 처음엔 하찮게 느껴졌다. 마치 사건의 결을 얼토당토않게 만드는 가십에 불과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정요섭도 처음에는 그저 웃고 넘겼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그 소문은 김요섭의 진술과 어딘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었다. 김요섭이 한 진술은 이랬다. 그가 보았다는 말은 단순히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 말이 사람처럼 두 발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걸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자신도 눈을 의심했다고 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겁을 먹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고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김요섭과 그의 동료들은 도망치느라 끝까지 그 말을 보지 못했지만, 그 말이 어디론가 걸어가려고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요섭은 김요섭의 진술을 들을 때는 당연히 헛소리로 치부했다.
‘도대체 말이 어떻게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도망친 이후 말이 어디로 갔는지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어떤 수레도 발견되지 않았고, 수레 발견 지점은 전혀 엉뚱한 데였다. 모든 정황이 김요섭의 증언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그 말이 어디로 향했다기보다는 김요섭 일행이 어디에 유기했는지, 그나마 그의 진술을 믿어준다면 그런 쪽으로 수사하는 것이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소문이 김요섭의 진술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소문에 따르면, 그 말은 단순히 비틀거리며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말이 마구간으로 숨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말들이 병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말이 저승사자처럼 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죽음을 몰고 다닌다는 소문을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실제로 한두 마리가 픽픽 쓰러지는 걸 넘어서, 뭔가 더 기묘한 광경이 그곳에서 벌어졌다는 소문이었다.
"그 말이 그냥 쓰러진 게 아니라네. 네 발로 뛰다가, 다시 사람처럼 걷다가, 또 갑자기 네 발로 달리곤 했다고 하더군."
정요섭은 이 황당한 소문들이 사건의 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김요섭의 증언은 전혀 신빙성이 없어 보였지만, 기묘한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한 시점과 증언의 내용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한 장소에서 죽은 말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이제 성경 곳곳에서 말에 관해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정요섭은 소문의 중심에 선 마구간을 찾아갔다. 직접 듣는 것이 소문을 지워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을 의심하고 소문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의심했다. 의심을 확신으로 전환하려면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최대한 당사자에게 가까워지는 길뿐이었다.
“분명히 그랬어요. 내가 겁에 질려 도망치기는 했어도, 똑똑히 봤다니까요. 두 발로 걷는 말이 마구간으로 들어갔다니까요! 너무 놀라서 감히 싸우거나 막을 엄두도 못 냈죠.”
한참 뒤 사람들을 몰고 와서는 마구간 문을 열어보니 녀석은 온데간데없고 말들만 피를 토해놓고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는 힘없이 축 늘어져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간혹 고통스러워하면서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 말들이 온몸을 뒤틀며 잠시 일어서다가 다리가 부서졌는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말들도 이틀을 못 버티고 죽고 말았다.
관리인들은 처음에는 전염병일지 모른다고 여겼다. 다만 단순한 전염병이라 하기에도 생전에 들어본 적도 없던 증상이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그 병든 말들 근처에서 불쾌할 정도로 저주에 가까운 불평과 욕설이 들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그 말들 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정요섭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그 이야기를 곱씹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시장 한편에서 목격한 기이한 사건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김요섭의 진술과도 맞닿았다. 그는 마구간으로 들어갔다는 그 말을 추적하기로 결심했다. 점점 사이비 종교의 범죄를 추적하려던 것에서 저주가 드리운 초자연적인 사건의 미궁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형사로서 그런 건 체질이 아니었지만, 당면한 사건이니 외면할 수도 없었다. 분명 이 사건의 어딘가에는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실마리가 있을 것으로 믿어보려 했다.
달갑지는 않지만, 모든 사건의 시작을 알린 그 말이 저승사자처럼 말들 사이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녔다는 소문은 불길처럼 번지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말을 '죽음의 사자'라 불렀다. 매일 그 자리에, 같은 장소에서 그 말, 또는 그와 흡사한 말이 다시 보인다는 소문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미디어에서 비합리적인 소문을 확산시킨 책임도 있다. 확인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이야기 전개를 뉴스에서 스스럼없이 소개했고, 무당으로 대표되는 무속신앙계나 고등종교계의 반응을 취재하느라 바빴다.
마구간은 정요섭이 다녀간 뒤 하루도 되지 않아 아무도 출입할 수 없었다. 말의 사체는 모두 치워졌다. 어딘가로 이송되었는데, 소문에 따르면, 정밀 감식을 위해서 첨단 과학 장비가 있는 곳으로 옮겨진 것이라 했다. 국과수가 아니라면 그런 곳이 어디인지 사람들은 몰랐지만, 여하튼 그런 곳이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