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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09. 2024

다시 돌아온 죽음 (1/3)

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다시 돌아온 죽음> 줄거리

정요섭 형사는 도로에 계속해서 죽은 말들이 떨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조사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로 보였으나, 매일 새벽 같은 자리에서 말이 떨어져 죽는 일이 반복되며 불안감이 커진다. 사건이 초자연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정요섭은 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닌 무언가 더 큰 비밀과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 상인의 제보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의식을 치르듯 말의 죽음을 지켜보았다는 정보도 얻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에선 말들의 죽음이 일상화되고,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점점 더 두려워한다. 죽은 말들이 도시 곳곳에 퍼지며 공포가 극에 달하고, 이 사건이 전염병과 저주 같은 초자연적 재앙일 수 있다는 불안이 도시를 휘감는다.





#1

사내들은 어두운 밤, 성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뒤에서 다가오는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을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게 했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땅을 울렸지만, 어느 순간 그것마저 멈췄다. 한참을 달린 후에야, 아무것도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몸을 숨겼다. 숨이 가라앉자, 모두의 얼굴에 안도와 함께 한 가지 깨달음이 스쳐갔다.

“그 여자, 그 여자를 놔두고 왔어,”

한 사람이 숨이 가쁘게 몰아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혼란 속에서 사내들만이 도망쳐 나왔음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곧,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차피 일행도 아니었잖아.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하는 짓이야. 그 여자도 좀 이상했다고. 죽은 말을 물어뜯고는. 그 여자, 귀신 아니야? 말을 깨우러 온...”

“아침이 밝으면 관청에 신고하고, 그때 가서 시신이라도 수습하자고.”

가장 연장자인 사내가 무겁게 말했다. 말에 취하고 폭력에 찌들었다가 깨어나서는 숙취에 머리가 아픈 것처럼 한 손으로 머리를 주물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자를 놓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현재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곤혹스러운 느낌이 묻어났다. 하기야 그들에게 여자는 철저하게 남이었다. 심지어 예상치 못하게 끼어들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낸 이상한 존재였다. 더구나 지금으로선 현실적인 판단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이상한 곳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침묵 속에서 망설였다. 그때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장에서 이를 말리던 사내였다. 그는 갈등 속에서 눈을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저는 다시 되돌아가 볼게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어쩌면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요.”

모두가 그 말을 듣고, 모르는 사람에 대해 쓸데없는 자비심이 들면 죽음이 스쳐간다며, 그러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굳건했고, 사내들의 시선을 모두 끌었다. 그들은 반대했지만, 그의 결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몇 번 말리다가 그들로서도 시큰둥해졌다. 자신들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치기 어린 의협심으로 큰코다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내도 있었다. 후회하지 말라며 건성으로 말리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누구도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고, 결국 그는 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내는 분명히 자신이 가던 방향을 알고 있었다. 그가 뛰어왔던 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여인이 남겨졌던 곳으로 바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복잡한 길은 아니었다. 초행길도 아니었다. 성 밖으로 건축 자재나 폐기물을 실어 나르다 보니, 어찌 보면 성에 사는 사람 중에서는 근방의 길을 가장 잘 아는 축에 속했다. 그런데 당연히 알고 있던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점점 익숙한 풍경으로 이어지지만 알고 보면 낯선 풍경으로 다가와 그를 에워쌌다. 계속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꼴이었다. 그가 한참을 달렸을 때, 이미 그 길이 익숙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무슨...?”

그는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수레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이 나오지 않자 문득 두려워져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오려 했지만 역시 반복된 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땀이 흠뻑 젖은 채로 포기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자신이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가 사내들과 헤어졌던 그 자리였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그 순간 사내의 눈앞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던 사내들이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땅에 쓰러져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 것처럼 보였다. 시신은 사방에 널려 있었고, 핏자국은 생생했다. 왜 그들이 죽었는지,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내는 온몸이 떨려왔다. 눈앞의 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는 성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속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뒤엉켰다.

성 안에 도착한 그는 사건을 관청에 신고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꼬였다. 사내가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용의자로 몰렸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함께 그의 모든 말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목격자는 없었다. 며칠 후, 사내가 말한 장소에서 한나절쯤 떨어진 곳에서 빈 수레만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졌다. 성문을 나가 사내가 말한 방향에서 정반대로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여인의 행방도 묘연했다. 관청에서는 그가 여인을 죽인 후 사내들과 싸우다 혼자 살아남은 것이라 추정했다. 또는 애초에 여인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점점 궁지에 몰렸지만, 사내는 그 이상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2

”이름?“

형사 정요섭은 타자를 칠 준비를 했다.

”김요섭이요.“

정요섭은 고개를 들어 시큰둥하게 김요섭을 보더니 타자로 그 이름을 쳤다.

“나랑 이름이 같군.”

지나가는 말에 김요섭이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는 투로 대답한다. 그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좋지를 못해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사소한 시비라도 붙지 않는 건 오래 전부터 그들 가족이 오랜 이방인 생활을 하면서 얻은 지혜였다. 처세라고 해도 좋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이제는 죽은 아버지의 당부를 김요섭은 잊지 않았다. 언제나 겁이 많고 배울 것이 딱히 없는 힘없는 아버지였더라도, 생존하는 법에서만큼은 배울 것이 있었다. 그는 어쨌든 성경에서 곤궁하더라도 자식들 밥 굶기지 않으면서 살았던 터였다. 그 때문에 그 자신은 큰 병을 얻기는 하였다. 병을 치료할 돈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쯤은 각오했던 것인지, 마지막 치료를 거부할 때에는 도인처럼 초연하기까지 하였다. 엄마는 눈물만 흘리며 한숨을 쉬었다.

“김요섭인가요?”

“아니, 정요섭.”

정요섭 형사는 이 사건을 시비가 붙어서 참극이 벌어진 사례로 보았다. 여럿이 다툼을 벌이다가 한 명만 남기고 5명이 죽은 사건이었다. 김요섭이 주장하는 사건 내용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자신의 무죄를 변명하느라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한마디로 헛소리로 들렸다. 소설을 써도 유분수지. 이왕 자기 무죄를 입증하려면 좀 그럴 듯한 걸로 창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요즘 왜 이러지? 정말 악귀라도 있는 거야, 뭐야?”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담고는 후루룩 마시며 지나가던 선배 형사가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요즘 퇴근하는 날보다 잠복근무하는 날이 많다 보니 나올 법한 푸념이라 주변의 형사들이 한숨을 쉬며 따라 웃었다. 정치, 재계 비리도 아니고 종류가 미신으로 분류되니 한숨이 나올 만했다.

정요섭이 느끼기에, 최근 들어 부쩍 말다툼으로 시비가 일더니 끝내는 강력범죄에 이르는 사례가 많아진 것 같았다. 어젯밤에 들어온 술 취한 부랑자는 이게 다 그 말 때문이라고 요상한 소리를 해댔다. “말의 저주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런 말을 기록에 남기기에는 그랬다. 그냥 서류철로 머리를 가볍게 후려쳤을 뿐이다.

“왜 네 문제를 죽은 말에게 떠 넘기냐? 이 자식이 주체성이 없어, 주체성이.”     

그러나 이 사건이 정말 기이하다고 느껴지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말이 대로변에서 죽는 사고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말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죽는 사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저 사고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첫 번째 사고 후, 새벽마다 어김없이 한 마리씩 하늘에서 말이 떨어져 죽는 사건이 일주일 동안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새벽의 도시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로에서 말이 죽는 것으로도 모자라, 매일 말 한 마리씩 같은 자리에서 죽어 있었다. 분명 첫 사건 이틀 뒤부터는 주변을 통제하고 사건의 추이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런데도 막을 수 없었고,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았다. 그냥, 정말로 하늘에서 말이 뚝 떨어져 죽는데, 아무리 주변 빌딩 상황을 고려해도 수직으로 말이 떨어질 순 없었다. 헬리콥터라도 지나가다가 말을 떨어뜨리지 않는 한. 그런데 그날 새벽, 도로 위에 죽어 있는 말 한 마리가 발견된 것이다. 전후맥락이 증발한 채 그냥 거기 있었다고 해야 한다.

분명 기이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거니 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불안해했다. 매일 아침 대로변에 나가 보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연이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종의 말이 떨어져 죽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이 현상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말이 죽을 때마다 당국은 재빨리 그 시체를 치워갔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시체를 더 빨리 수거해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말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고, 불안은 더욱 커져갔다.

더욱 섬뜩했던 것은, 매일 발견되는 말이 마치 처음에 죽었던 그 말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분명 다른 말일 텐데, 같은 종의 말이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눈에는 같은 말로 보였다. 같은 크기, 같은 색깔, 같은 자세로 죽어 있는 말. 사람들은 그 말이 처음에 죽었던 말과 똑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각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이 정말로 처음 죽었던 말과 동일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같은 말이라는 근거가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광기의 두려움이 누적될수록 믿음은 더 견고해졌다. 몇몇 사람들은 말이 떨어질 때 하늘에서 이상한 빛을 보았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의 몸에 기묘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다고 여겼는데,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는데, 그럴수록 갑자기 여러 곳에서 그럴 듯한 근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근거를 믿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두려움의 이유를 찾으려고, 그래서 두려움을 죽이려고. 또 어떤 때에는 그 두려움의 팽창에 휩쓸려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할 이유를 얻기 위해서.

이와 함께 인터넷에서는 각종 가짜 뉴스가 진실을 왜곡한 채 빠르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말의 시체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더욱 기괴하고, 불길한 내용으로 변질되었다. 일부는 정부가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또 다른 이들은 이 현상이 초자연적인 현상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말이 떨어지는 사건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어째서 말이 매일 같은 장소에 떨어져 죽는지, 그것을 치운 뒤에도 다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끝없는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왜 일주일 동안 죽은 말이 치워졌는데도, 다음날이면 또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거지?"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지만, 누구도 확실한 설명을 내놓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이 기묘한 사건은 사람들 사이에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고, 집요하게 반복되는 광경은 그들의 일상 속에 침투하여 더 이상 단순한 사고로 넘길 수 없는 괴이한 현실로 자리 잡아갔다. 한마디로 말이 되는 것이 없었다. 죽은 말이 죽지 못한 채 유령처럼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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